
지난 20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스물아홉 음대생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김민재는 뛰어난 재능을 갖췄지만 집안 빚을 갚기 위해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콩쿠르에 나가며 피아노 치는 즐거움을 잃은 지 오래인 박준영 역을 연기했다.
드라마 종영 다음 날인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민재는 이제 조금 드라마가 끝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면서 "소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성장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고, 얻어간 것도 많았으며, 자기 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 '브람스'와의 첫 만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 전공자인 류보리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민재는 전작 '낭만닥터 김사부 2' 끝나고 나서 거의 바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본을 봤다.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색다름'이었다. 그는 "잔잔한데 그 안에서 뭔가 요동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이지만 이면에는 그 사람의 수줍음과 부끄러움도 있고, 어떤 힘든 사정도 있다는 게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로맨스도 그렇고 피아니스트라는 역할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해외 투어를 다니는 피아니스트 박준영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상처도 사연도 많은 인물이었다. 김민재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지만 '이 장면에서는 이런 느낌, 이런 색깔을 내야 한다'보다는 그냥 준영이란 사람을 진심을 다해 마주하려고 했다. (극중 준영이) 만나는 사람이 다 다르고, 그 안에서 오는 느낌이 다 달라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준영 캐릭터에 묻은 '김민재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김민재는 "남을… 배려하고…"까지 말하고 "제가 제 입으로…"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김민재는 "성정, 그 아이의 성정, 마음 이런 것들을 녹여내려고 저는 노력했다. 제가 착하다는 게 아니라"라고 부연했다.
류보리 작가, 조영민 PD와 '진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꼭 행복하게 해 줄게요'라고 한 류보리 작가의 말이었다. 김민재는 류 작가와 '엄청 장문'으로 메신저 대화를 곧잘 나눴다. 클래식 업계에 관한 이야기부터 왜 이 피아노곡을 치는지까지 "엄청 디테일하게 많이 알려주셨다"는 게 김민재의 설명이다.
조 PD하고는 '담백하게 하자'는 대화를 나눴다. 김민재가 예로 든 장면은 엄마(김정영 분)와의 감정 씬이었다. 김민재는 "엄마랑 하는 감정씬에서 눈물은 필요하지 않다고, 진심으로 얘기하자고, 진심이면 된다고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 PD가 현장에서 마음껏 연기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김민재는 "저희 감독님, 작가님이 진짜 좋으신 분이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진짜 좋으신 분들이다. 제가 많은 위로를 받았다"라고 전했다.
◇ 어려웠던 피아노 연주, 더 어려웠던 피아니스트 연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배우들은 극중 장면을 직접 연주해 더 화제를 모았다. 김민재는 "저를 포함해 악기를 연주한 모든 배우들이 똑같이 생각한 것 같다. 클래식 드라마지만 우리가 이걸(연주를)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이라고 운을 뗐다.
김민재는 한 달 반 정도를 피아노 연습에 쏟았다. 피아노 연주도 어려웠지만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 연기를 "잘 해내야 한다는 게 어려웠고 너무너무 부담됐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피아니스트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어떤 게 적정한 선이고, 시청자들에게 어떤 모습이 피아니스트처럼 보일까 그런 고민을 되게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다가 어떻게 하게 된 것 같다. 막 했다는 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박준영 역을 연기하면서 숨겨진 '피아노 재능'을 발견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김민재는 "하하" 하고 웃으며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워서 다행이라고 답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역할을 아예 못 했을 것 같다면서. 그의 피아노 이력은 이렇다. 일곱 살 때 시작해 체르니 30번까지 진도를 나갔고, 중학교 때 코드 진행을 배웠고 실용 음악학원을 잠시 다녔다. 김민재는 "독학으로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데, 클래식 곡 완곡 연주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라고 전했다.
'진짜 피아니스트'처럼 보여야 했기에 의상과 머리 스타일도 신경 썼다. 스타일리스트 팀과 많은 자료를 주고받으며 상의했다. 드라마 미술팀을 포함해 회의를 무척 많이 했다. 류 작가 역시 어떤 옷을 입을지 자주 의견을 전달했다. 머리 스타일에 관해서는 "왠지 모르게 기르고 싶었다. 시청자분들에게 (제가) 피아니스트라는 게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처음에 딱 봤을 때 '아, 이 사람이 피아니스트구나!' 하는 걸 인지시켜야 했는데, 그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조금 긴 머리를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 '브람스' 빛낸 멜로 연기, 박은빈에게 공 돌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두 개의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멜로 드라마이기도 했다. 동료 음악가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짝사랑하는 브람스라는 구도는 드라마 초입에 비중 있게 다뤄졌다. 가장 절친한 친구 현호(김성철 분)와 그의 여자친구 정경(박지현 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안은 인물이 바로 박준영이었다.
자신의 처지가 겹쳐 보여서인지 브람스를 치지 않는 김민재는 삼각관계를 두고 "준영이가 정경이와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까 제일 궁금하고 기대됐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어 "정경이한테 가진 감정이 한 가지가 아니다. 뭔가 딱 '사랑해' 이런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부채감 등 여러 가지가 있어서 이걸 어떻게 정리해 나갈까 싶었다. 현호한테는 어떻게 하게 될까 이런 게 너무 재미있었지만, 그 관계가 위험한 느낌은 아니었다"라고 부연했다.
준영은 정경을 향한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사랑인 줄 알았으나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김민재는 "사실 준영이는 감정을 정확히 몰랐던 거다. '아, 내가 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부채감이었구나' 이걸 알게 되면서 정리하는 그런 방식이 저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했다. 정경 때문에 사이가 멀어진 '절친' 현호에 대해서는 "미안하다. 저는 진짜 열심히 미안하다"라고 반복해 웃음을 안겼다.
마침내 자각하고 "사랑한다"라고 고백한 상대 송아에게 빠진 결정적 순간이 궁금했다. 극중 송아와 준영은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서로를 본다. 저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모두의 환대를 받는 피아니스트 준영과, 트집 잡히는 것도 모자라 모욕적인 말을 듣고 퇴장해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아. 송아에게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일을 들킨 순간이었다. 하지만 준영에게는 달랐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죠. 저희가 리허설할 때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고 계속 '저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뭔가 이거(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게 되게 신경 쓰였던 것 같아요. (나중엔) 우연이 생겨서 만나게 되는데… 사실은 그냥 처음부터 뭔가 달랐던 거죠, 감정이. 제가 생각할 때 사람이 연인이 되는 관계는 그렇게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게 아닐까, 운명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정통 멜로'를 연기한 건 김민재도 박은빈도 처음이었다. 김민재는 웃음 띤 채로 "너무 재미있었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그는 박은빈을 극중 이름인 '송아'라고 부르며 "송아랑 같이하는 씬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송아랑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았던 거 같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씬이 나왔던 거 같고 그런 씬들 찍고 나면 되게 기분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뭔가 잘된 거 같다, 잘 만들어진 거 같다"라고 말했다.
김민재는 "멜로로서 상대방에게 매력 어필해야겠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진심으로 솔직하게 얘기하자' 했다. 준영이란 인물은 그런 사람이니까. 그냥 솔직하게 담백하게 하자는 게 가장 큰 거였고, 감독님도 그렇게 많이 디렉팅해 주셨다"라고 전했다. 박은빈이 연기하면서 김민재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고 한 일화를 전하자, 김민재는 "왜 그렇게 얘기했을까요?"라고 되물으며 "그냥 (박은빈이) 좋은 사람이었고 저도 엄청 많은 배려를 받았다. 제가 어떤 배려를 해줬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그냥 연기하기 너무 좋았어요. 그냥 이렇게 주면 이렇게 받고, 이런 것들이 서로 말하지 않아도 뭔가 잘 만들어진 느낌이 들었죠. 준영이가 송아를 봤을 때처럼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했듯이 너무 단단한 사람이고 같은 또래지만 분명한 선배여서 많이 의지하기도 했어요. 뭔가 그냥 너무 진짜 좋은 사람! 선배미라기보다는 뭔가 든든함? 든든함이 있었어요. 음, 단단하고 든든하고 멋있었어요. (웃음) 누나여서라기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되게 제가 성숙한데, 제가 성숙하다고 얘기하는 건 좀 그럴 것 같고… 진짜 뭔가 단단해요. 외유내강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이에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