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출처가 불분명한 수백억대 자금거래까지 묵인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은행이 단순히 선관의무를 다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 옵티머스 펀드 사기를 적극적으로 은폐 또는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2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트러스트올은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75차례에 걸쳐 740여억원을 하나은행 수탁영업부에 입금했다. 트러스트올은 옵티머스가 펀드 자금을 빼돌린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된 곳이다.
트러스트올은 입금 시 비고란에 하나은행에 돈을 보낸 명목이 골든코어나 아트리파라다이스, 엔비캐피탈 등 옵티머스가 투자한 회사들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기 위한 것(대위변제)이라는 취지로 기재했다. 여기서 대위변제한 채무는 해당 회사들이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이자나 원금 일부 등으로 추정된다.
하나은행 수탁영업부는 옵티머스와 같은 자산운용사의 자금을 대신 보관하면서 운용사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투자를 집행하는 곳이다. 예컨대 옵티머스가 '펀드 자금으로 A회사의 채권을 사라'고 지시하면, 이를 그대로 이행하고 투자에 따른 수익 등도 받아 관리한다.
옵티머스의 지시로 하나은행이 A회사의 채권을 사들였다면 A회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투자를 받은 것과 같다. 따라서 A회사는 채권 내용에 따라 정해진 날짜에 원금과 이자를 하나은행 수탁 부서에 지급하고, 은행은 이를 옵티머스 펀드를 산 투자자의 돈에 반영한 후 정산해 매일 운용사에 보고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대출사기에서 나타나는 행태와 유사하게 보인다"며 "돈을 모두 빼돌리면서 적발되는 것을 늦추기 위해 최소한의 이자나 원금 일부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모양새로, 감독당국은 입금 주체가 수상하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조사에 착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골든코어나 아트리파라다이스 등에서 투자금을 빼내 깡통회사가 된 것을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트러스트올이 대신 원리금을 납부해준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옵티머스 펀드는 골든코어와 엔비캐피탈 등 전혀 연관성이 없는 다수 회사에 '분산투자'를 한 것처럼 가장했다. 그런데 트러스트올 '한 곳'이, 이 연관없는 여러 회사들의 채무를 대납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하나은행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실제로 골든코어와 아트리파라다이스, 엔비캐피탈 등은 모두 옵티머스 핵심 일당이 소유하거나 운영에 관여한 회사로 드러났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돈을 끌어 모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 회사에 투자금을 쏟아 붓고 빼돌린 셈이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하나은행이 트러스트올의 대위변제를 한 번이라도 수상히 여겼다면 옵티머스의 사기 행각을 일찌감치 알아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트러스트올의 대표가 바로 옵티머스 2대 주주이자 이사인 이동열(45·구속기소)이기 때문이다.
이어 "개방형 펀드는 매일 정산을 하기 때문에 트러스트올의 수상한 입금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점에 대해 제대로 살펴봤다면 대위변제 해준 회사들이 결국 옵티머스 관계사라는 사실도 파악했을테고 펀드가 사기적 거래에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역시 하나은행 수탁영업부로 트러스트올 자금이 들어온 경위와 목적, 처리 과정에서 은행 내부의 조력·방조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탁은행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서 여러 수상한 지점을 수사의뢰 등의 방식으로 통보해 전반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하나은행 수탁영업부 팀장 A씨를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나은행 내부에서는 고의적인 은폐나 방조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 "하나은행의 수탁 부서는 자산운용사들에 대한 관리가 엄격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례적인 '대위변제' 명목의 거래가 1년 이상 지속된 것은 충격적"이라며 "팀장 개인이 혼자 눈감아준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하나은행은 "수탁사로서 운용사의 운용지시에 따라 상환금의 정상적 입금 여부만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며 "입금자가 누구인지, 입금권한이 있는지는 운용의 영역이므로 수탁사가 이에 대해 감시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