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15총선 압승으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한 탓에 당초 싱거운 국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수준을 넘어 정쟁과 설전으로 점철된 국감이었다는 혹평이 쏟아져 나온다.
◇검찰총장·법무장관 '길들이기'장 된 법사위…"똑바로 앉으라" 자세 지적까지
"법원행정처장님, 같은 법조인으로서 이거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제가 답변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장에서 일어난 민주당 소병철 의원과 조재연 법원행정처장 간 대화의 일부다.
대법관이자 사법부인 대법원의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수장인 조 처장은 정치적인 색을 띈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검사장 출신인 소 의원이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같은 법조인"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사법부 기관장의 입을 빌려서까지 윤 총장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지난주에 열린 법사위 국감도 정쟁의 장이었다.
대검찰청을 대상으로 열린 지난 22일 국감은 시청률이 무려 10%에 육박할 정도로 전국민의 관심을 받았지만, 윤 총장이 추 장관의 부하인지 여부와 그의 행보가 정치색을 띈 것인지 여부 등 정무적 사안만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도 답변 태도를 문제 삼는 등 추 장관을 몰아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일 법사위 국감장은 국무가 아닌 추 장관 아들의 특혜 의혹 논란을 검증하는 검증의 장이자 설전의 장이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국회에 나와서 27번 거짓말을 했다", "국회의원들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냐"고 질타하자 추 장관도 "27번 윽박질렀다", "의원님도 대단하시다"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22일 대검 국감에서 "추 장관은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야당 의원이 지적을 하면 '소설 쓰시네. 27번 윽박지르지 않았냐'고 비웃기까지 한다"며 "윤 총장은 박 의원이 '똑바로 앉으라'고 하니 똑바로 앉더라. 추 장관보다 수십 배 정도 예의바르게 답변한다"고 '태도 우위론'을 설파했다.
◇정쟁 탓에 피해자는 뒷전으로 밀려난 라임·옵티머스 사태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이번 국감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여야 정치권이 모든 상임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감사에 나서는 만큼, 어느정도 국민의 궁금증이 해소되거나 해결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여야는 금융당국의 관리 소홀을 계속해서 질타만 했을 뿐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민주당 기동민 의원 등의 연루설을 기화로 '권력형게이트'에 힘을 실으려 했지만, 이미 모든 상임위의 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에 내준 터라 라임·옵티머스 관련자 중 단 한 명도 국감 증인으로 출석시키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의혹을 제기하지 못했다.
'사모펀드 비리방지 및 피해구제 특별위원회'를 '라임·옵티머스 권력형 비리게이트 특위'로 전환시킨 데 이어 특별검사 도입까지 촉구했지만 이미 보도된 내용을 다시 묻는 등 결정적인 한 방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여당의 방어에 무력한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법사위에서도 사건 관련 의혹들의 진위 여부나 피해자 구제책 마련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고,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여야 간 신경전만 계속됐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수 조원의 피해가 발생했고, 현직 검사가 연루된 금융사기 사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공방만 남았다"며 "누구를 위한 국정감사였느냐"고 질타했다.
◇욕설·몸싸움에 게임까지…실종된 정책국감에 "상시국감" 필요성까지 언급
국감기간 중간중간 눈길을 끈 사건들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긴 마찬가지였다.
23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서는 말 그대로 '볼썽사나운' 풍경이 연출됐다.
박 의원이 "당신"이라는 표현을 쓴 데 격분한 이 위원장은 "어디다 대고 당신이야",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야 박성중, 보이는 게 없어" 등 고함을 지르며 박 의원을 향했다.
박 의원도 지지 않고 "똑바로 하세요", "XX, 위원장이라고 진짜 더러워서", "'야'라니 이 건방진, 나이도 어린 XX가"라고 대응한데 이어 "이 사람이 정말, 한 대 쳐버릴까"라며 손을 들어올렸다.
분함을 삭이지 못한 이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받침대에 집어던졌다.
22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장에서는 민주당 송갑석 의원과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고성을 주고받았다.
송 의원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향한 김 의원의 질의가 잘못됐다고 말하자, 김 의원이 송 의원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 이학영 산자위원장에게 "회의 진행을 어떻게 하시는 거냐"고 따져 물었기 때문이다.
송 의원은 "어디서 끼어들고 있어", "국회의원이라고 아무 말이나 다 하는 줄 아냐"라며 삿대질을 했고, 김 의원도 "어디서 삿대질이냐", "치겠다"고 맞서면서 회의가 정회됐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한 질의가 오가던 지난 8일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장에서도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고장 난 레코드판 돌리듯 돌리고 계시다"고 지적했다가 한참 설전이 벌어졌다.
이런 화제성 사건들로 정책국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여야 모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염태영 최고위원은 "짧은 기간에 여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각종 무리수가 나오기도 한다"며 "상시국감 도입으로 이벤트 국감, 정쟁 국감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상임위원장 전원이 여당인 민주당 소속이고, 국감 증인 채택이 물 건너가면서 '맹탕' 우려를 받아왔기 때문에 국민의 주목을 받기 위한 이슈성 사건 발생이 어느정도 예상됐다"며 "국회 운영의 정상화와 함께 국회가 현안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상시국감 등의 제도적 보완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