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과로사 유가족 "건장하던 20대 아들의 죽음, 명백한 과로사"

지난 12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故장덕준씨
유족 "쿠팡에서 1인 4역하며 곰처럼 일해왔다"
쿠팡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대책 마련해야

22일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규탄 및 유가족 면담 요구' 기자회견(사진=차민지 기자)
"아들은 2년 근무 후 무기계약직 혹은 직원이 될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심사를 하기에 힘들어도 주5일 근무를 했습니다. 이런 아들을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해 곰처럼 부려먹다 죽음으로 몰고 간 쿠팡은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지난 12일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돌아온 직후 숨진 故 장덕준(27)씨의 아버지 장모씨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장씨는 "아들은 쿠팡에서 1인 4역을 했다"며 "제일 오래 있었고 제일 잘한다는 이유로 취약 부분에 투입돼 일을 마무리해왔다"고 말했다.

장씨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22일 쿠팡 측과의 면담을 요구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쿠팡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쿠팡은 사과 대신 '과로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고인의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야간근로와 교대근무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다"며 "고인은 3개월간 1주일에 5~6일간 야간 노동을 해왔다. 불규칙적이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을 고려하면 장씨의 사망은 누가 봐도 분명한 과로사"라며 "쿠팡은 당장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죄하고 고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쿠팡 측은 "고인의 사망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고인은 택배 업무와는 상관없는, 물류센터에서 비닐과 빈 종이박스 등 포장재를 공급하는 지원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라는 입장을 낸 바 있다. 또 "실제 고인의 지난 3개월간 평균 근무시간은 주44시간이었다"며 과로사 주장을 반박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에 대책위 박석운 공동대표는 "태권도 3단 보유자, 나이 27살의 건장한 청년이 쿠팡에서 일하는 1년 4개월의 시간 동안 몸무게가 75kg에서 60kg으로 빠졌다"며 "전형적인 과로사인데 쿠팡이나 노동부에서는 이러한 실상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은 "쿠팡의 총알배송을 보면서 수년 전 피자배달 업체의 30분 피자 배달이 생각났다"며 "당시 피자를 배달하던 알바생이 버스에 정면충돌해 사망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연맹에서는 국민들께 피자를 조금 늦게 드시더라도 알바생들이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호소했고 당시 30분 배달제는 폐지됐다"며 "(이번에도) 국민들이 빠른 배송이 아닌 공정한 배송을 외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이날 쿠팡과의 면담을 촉구했지만, 사실상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대책위 관계자는 "장덕준씨의 어머님과 아버지를 대구에서 모시고 왔지만, 쿠팡에서는 책임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며 "실무진이 나와 요구사항만 받아 가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20일 CJ대한통운 소속 택배 간선차 운전기사 강모(39)씨가 휴게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숨졌다. 올해 들어 과로사로 숨진 택배노동자는 택배기사 9명, 강씨를 비롯해 배송 외 작업을 맡는 택배종사자 4명(장덕준씨 포함) 등 모두 13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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