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사기행각에 놀아난 금융안정망

자산운용사 감시해야할 판매사·사무관리사·수탁사
NH투자증권, 사모펀드 대란 와중에 4천억 원 판매
예탁결제원, 사모사채를 공공매출 채권으로 바꿔줘
하나은행, 부실기업으로 자금 빠져나가도 의심안해
속아넘어간 관계 금융사들 덕분에 완성된 사기행각

그래픽뉴스팀
5천 억원대 피해가 예상되는 옵티머스 사기행각의 전모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감시하고 관리해야할 금융시스템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사실 역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기행각에 놀아난 금융사들 "안전장치는 없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 같은 자산운용사들이 만든 사모펀드가 금융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운용되는 과정에는 판매사와 사무관리회사, 수탁회사 등 여러 금융사를 거친다.

자산운용사에 사모펀드 판매부터 운용까지 모든 과정을 맡길 경우 작은 실수는 물론이고 횡령이나 배임 등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감시 기능을 하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고, 옵티머스펀드 역시 관련법에 따라 이같은 안전장치가 있었다.

옵티머스펀드를 직접 금융소비자에게 권유해 판매한 판매사는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대표적인 증권사들이었다. 또, 펀드 편입자산 정보를 관리하는 사무관리회사는 금융공기업인 예탁결제원이었고, 펀드자금의 입출금을 담당하는 수탁회사는 하나은행이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옵티머스펀드 관련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장을 살펴보면 이들 금융사들은 안전장치 역할은 커녕 옵티머스의 사기행각에 그대로 속아넘어 가거나 오히려 방치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모펀드 대란에도 옵티머스 판매 열올린 판매사

판매사 가운데 지난 7월 21일 기준 옵티머스 펀드 설정원본 5151억 원의 84%에 달하는 4327억 원을 판매한 NH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6월 18일에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에게 상품 설명을 듣는 상품승인소위원회를 연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당시 김 대표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 대한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만큼 매우 안전한 상품이다. 조달청이나 나라장터 사이트를 통해 실제 공사가 이루어진 매출채권인지 확인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거짓말을 했다.

NH투자증권 측은 당시 자회사가 사채를 발행하여 매출채권 대금을 자회사에 지급하는 구조 등 세부사항에 대한 보완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옵티머스 사내이사인 윤모 변호사가 작성한 '법률검토 보고서'만 믿고 펀드 판매를 승인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옵티머스가 투자하기로 한 공공기관 공사대금채권, 즉 확정 매출채권은 특별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는 이상 원칙적으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옵티머스펀드가 상품 설계 첫단추부터 거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확인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채 옵티머스 측의 설명만 믿고 4천 억원이 넘는 액수의 펀드를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픽뉴스팀
판매 시점도 문제다. NH투자증권이 펀드를 판매한 시점은 지난해 6월 중순부터다. 두달여 뒤인 8월부터는 해외금리연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터지고 곧이어 다시 두달여 뒤인 10월부터는 첫 대규모 환매중단을 선언한 라임펀드 사태가 터지는 등 사모펀드 대란이 발생했음에도 옵티머스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NH투자증권이 펀드 자산실사에 나선 것은 올해 4월 28일로 이미 사기행각이 막바지에 다다른 뒤다. 이 때도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 측이 위조한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 등을 통해 서류상으로 문제없다는 것만 확인한채 돌아갔다. NH투자증권은 올해 5월 21일까지 옵티머스펀드를 판매했다.

◇속아넘어간 금융사들 덕분에 완성된 사기행각

또 다른 안전장치로 사무관리업무를 맡은 예탁결제원도 옵티머스의 꼭두각시 역할에 그친 것은 마찬가지다. 사무관리회사는 펀드 자산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관리하는 책임이 있지만 옵티머스가 요구하는대로 자산을 등록해 줬다.

공소장에 따르면 옵티머스는 예탁결제원에 펀드 자금으로 매입한 대부업체 등의 사모사채 채권명을 '한국토지주택공사 매출채, 부산항만공사 매출채 한국도로공사 매출채' 등과 같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등록해달라고 요청했고 예탁결제원은 사실관계 확인없이 요구를 들어줬다. 또 펀드 기준가를 산정할때도 확인을 거치지 않은채 옵티머스가 제출한 '장부가'를 그대로 적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금감원 한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를 감시하기 위해 사무관리회사를 뒀는데, 운용사가 느닷없이 회사채를 가지고 있으면서 공공매출 채권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의심해야 하는게 당연하다"면서 "매출 채권을 발행했다는 공공기관에 전화 한 통 하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사무관리회사 관계자 역시 예탁결제원의 행태에 대해 "전혀 일반적이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펀드자금을 관리하는 수탁회사인 하나은행도 마찬가지다. 실체가 없는 부실기업에 대규모 펀드자금을 송금하고, 위조된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가 오갔지만 하나은행은 제대로된 확인절차 없이 옵티머스의 운용지시에 따랐다.

당초 옵티머스는 기업은행과 수탁계약을 맺었지만 기업은행 측이 자산관련 서류를 요구하는 등 확인 요청을 계속하자 지난해 5월 수탁회사를 하나은행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자산운용사의 사기행각을 감시해야할 금융사들이 오히려 아무 의심없이 사기범의 의도대로 움직였고, 이런 금융사들의 행태가 다시 다음단계 사기행각에 이용되는 악순환을 낳은 셈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 업무를 맡은 회사 한 곳이라도 검증에 나섰더라면 옵티머스의 사기행각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관계사들이 모두 옵티머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면서 결국 사기행각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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