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5명의 택배기사가 사망한 CJ대한통운은 최근 한 택배기사가 근무 중 과로로 인해 119로 긴급 후송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이를 공식 보고서에 담지 않고 별도 비공식 라인으로 정부에 통보했다. 국토부는 이를 알면서도 문제를 삼지 않았고 택배기사의 '협심증' 증상에 대해 별다른 기준 없이 '경증'으로 자체 분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로사의 주요 원인질환인 협심증에 대해 택배사와 국토부 모두 여전히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을 뿐더러, 정부 차원의 대책도 '유명무실'에 그친다는 논란이 예상된다.
◇협심증으로 119 후송된 택배 기사, 일일보고에는 기록無…"비공식 라인 보고"
16일 택배연대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김모(40)씨는 근무 중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고 가슴 통증을 느꼈다. 동료가 건넨 약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결국 김씨는 119로 긴급 후송됐다. 검진의사는 김씨에게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협심증' 소견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19까지 출동했던 당시 사건은 CJ대한통운이 국토부에 보고한 '추석 택배물량 종사자 관리 일일보고 현황'에 담기지 않았다. '일일보고 대책'은 최근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등 사망 사건이 이어지자 정부가 마련한 '택배종사자 보호조치 2차 권고안'에 담긴 대책으로,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5일까지 2주간 택배사가 직원의 건강상태 등을 비롯한 권고사항을 체크해 특이사항을 국토부에 보고하는 제도다.
CJ대한통운은 김씨 사건의 경우 일일보고 공식 보고서에 직접 담지 않고 국토부에 '비공식 라인'으로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건강상 문제를 공식적으로 드러내기 꺼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토부가 제공한 서식에 택배사가 회사 내부에서 생긴 건강상의 문제를 기록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관련 내용을) 별도로 주겠다고 해 별도로 받았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사실상 '꼼수'라고 지적될 수 있는 택배사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택배사에게 법적으로 국토부가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일일보고 자체가 '자발적인 권고안'이라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다"라고 토로했다.
CJ대한통운은 김씨 사건을 공식적으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김씨가 가슴 통증을 호소한 직후 바로 119를 불렀다. 이후 병원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며 "보고 여부에 대해 자세한 파악은 어렵지만 (축소 의도가 아니라) 큰 문제가 없었기에 공식 문서에 보고가 안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회사 내부 보고는 된 사안이다"고 해명했다.
택배연대노조는 "현장의 사고가 축소 보고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김씨 사건은 지난달 21일 발생했지만, 지난달 28일 발생한 사건으로 보고되는 등 '늑장 보고' 의혹도 일고 있다.
정부의 일일보고 대책이 '허울' 뿐인 대책이라는 지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택배사가 직원의 건강 특이사항을 보고했다고 하더라도, 국토부가 이에 대한 경중을 분류할 명확한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과로사의 핵심 원인질환인 '협심증'에 대해서 자체 판단으로 '경증'으로 분류하는 등 안일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이 '추석 택배물량 종사자 관리 일일보고' 기간 동안 국토부에 공식 보고가 아닌 '별도'로 보고한 건강이상자는 총 3명이다.
구체적으로는 앞서의 김씨 사건을 비롯해 △9월 25일, 분류작업 중 코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 후송 △9월 28일, 다리 불편한 상황 하지정맥류 수술 예정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여기에 '경미한 건강이상자'라고 이름 붙였다. 김씨 사건의 경우 119가 출동하고 과로사의 핵심 원인인 '협심증' 증상을 나타냈지만, 경미한 증상으로 자체 판단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과로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경미한'이라고 썼다"며 "내부자료로 쓸 것이라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고 대외적으로 나갈 자료였으면 그렇게 쓰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건강이상자 별송 현황'이라 정리하는 것이 문법적으로는 맞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협심증을 과로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안일한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경태 의원은 "택배종사자 과로사에 대한 더욱 엄중한 대처가 필요함에도 관련 증상을 위급상황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인식의 문제가 있다"며 "택배업계, 노조, 국토부, 고용노동부 등 민관 공동기구를 구성해 택배종사자 과로사 대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토부 차원의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이희종 정책국장(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소속)은 "현장의 사고가 축소 보고되고 있는데 국토부가 택배사들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