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인상'에 '사드 시설 개선' 청구서…전작권은 이상 없나

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서 美 방위비 인상 압박
사드 '안정적 주둔 여건' 마련도 요구
전작권 전환에 대해선 "조건 충족돼야 한다" 강조

한미 국방당국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52차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중요 쟁점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계획 등 여러 사안을 논의했다.

그런데 우리 군은 이번 회의에서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과 그간 잘 언급되지 않았던 성주 사드 기지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 마련 등 여러 가지 미국의 '청구서'도 받아들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욱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 전작권 전환에 대해 美 "조건 충족돼야"…韓 "시간표 가진 것 아니다"
52차 SCM 공동성명 11번의 내용
양 장관은 전작권 전환을 위해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계획에 지정된 이행과업의 추진현황을 검토하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 관련 진전에 주목하였으며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포함한 미래연합사로의 전작권 전환의 향후 추진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양 장관은 전시 작전권이 미래 연합사로 전환되기 전에 상호 합의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에 명시된 조건들이 충분히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양측은 '2015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기본 계획' 및 '2018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 수정 1호'를 완전히 준수할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양 장관은 올해 미래연합사의 기본운용능력과 완전운용능력 평가를 위해 사용될 전략문서 공동초안이 마련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하략)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COTP)'이란 지난 2014년 46차 SCM에서 한미가 합의한 3가지 조건이다. 말 그대로 이 조건을 충족해야 전작권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 합의 내용이다.

이는 △한미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확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초기 필수대응능력 구비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와 지역 안보환경으로 구성돼 있다.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할 미래연합사령부가 한국군 주도로 연합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도 거쳐야 한다. 검증은 기본운용능력(IOC),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까지 3단계 평가로 구성돼 있으며, 올해 FOC 검증이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원인철 합동참모의장은 지난 8일 합참 국정감사에서 '(COTP가) 조건별로 얼마나 충족됐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물음에 "작년에 조건 1을 평가했고, (한국군이) 핵심 군사능력 대부분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면서 "조건 2도 많은 부분을 (구비)했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최종적으로 한미 간에 일치된 의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전날 열린 국방부 국감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조건 3에 대해 "한미 정보당국이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주관적인 평가를 통해서 정치적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SCM은 이같은 내용을 다시금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인철 의장이 국감에서 "조건들로 우리가 전작권을 전환하는 것이 요원해지거나 너무 지연될 경우 그런 부분을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과는 다소 뉘앙스가 다르다. SCM의 공동성명은 현행 조건을 유지하겠다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SCM 모두발언에서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추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서 동맹은 더 강화될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의 목표는 2022년 5월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전작권을 돌려받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정책 사안이 되면서 '조속한 시일 내'로 바뀌긴 했지만, 목표 자체가 크게 변화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FOC 검증을 내년에 시행한 뒤 일단 전작권을 돌려받고, 차기 정부가 FMC 검증을 시행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검증 시기를 조정하자는 식으로 한국 측의 요구 자체는 있었고, 미국이 검토해 보겠다는 정도로 반응한 것이 아닐까 한다. 공동성명의 내용으로 봐서는 이렇게 되든 그렇지 않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전작권 전환은 이미 두 차례나 연기됐는데, 전환 시기를 못박으면 한미 모두 정치적인 부담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작권 전환은 정치적인 문제가 되기 쉬워, 이번 정부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리스크가 최소화되는 길이다"며 "우리 정부도 충분히 운용 연습을 하지 못했을 뿐 여러 해 동안 관련 준비는 꾸준히 해 왔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미 국방장관 사이에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공동성명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고 표현한 부분을 주목해 달라"며 에스퍼 장관의 언급과 관련해 "전작권 전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조속히 전환한다'고 수정한 만큼, 우리 측이 전작권 전환 관련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전작권 전환을 위해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 자리에서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시간의 개념은 없다. 조건의 개념이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준비태세가 갖춰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서욱 국방부 장관이 14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과 함께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참전 기념공원을 방문해 헌화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 모두발언부터 방위비 압박…정작 양국 국방부는 원래 협상 안 해

한편 이번 SCM에서는 모두발언에서부터 에스퍼 장관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이 시작됐다.

에스퍼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공동방위 비용) 부담이 미국 납세자에게 불공평하게 떨어져선 안 된다"며 "우리는 한반도에 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합의에 이를 필요성에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지난 3월 한미 실무진 급에서 일정 정도의 인상안으로 합의됐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됐다. 그 이후로 협상이 크게 진전되지는 않았으며 미국의 인상 요구는 계속돼 왔지만, 우리 정부는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만, 양국 국방부는 SMA 협상의 주무부처가 아니다. 이는 한국 외교부와 미 국무부의 소관사항으로, 양측에서 임명된 방위비분담 협상 대표에게 권한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SCM에서 논의되지도 않는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해당 사항은 올해 SCM에서 일체 논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통 방위비 분담 관련 내용이 SCM 공동성명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교부가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는 기본적인 원칙의 재확인에 보다 가깝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액수를 집요하게 요구한 사안이며 두 분(서 장관과 에스퍼 장관)이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16일 경기도 포천시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 최고전사 선발대회에서 장병이 기관총(M249·M240B)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 매년 있었던 '주한미군 유지' 빠져…"미군 세계전략 반영해 가능성 열어둔 듯"

다만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 관련 내용이 이번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무성한 추측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간 SCM 공동성명 내용에 포함됐던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 내용이 빠진 것을 이와 연계하며 미국이 주한미군의 감축 카드를 빼들 수 있다는 예상을 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이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음달 대선에서 미국의 정권이 교체될 경우 SMA 협상이 현재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 등으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그렇다면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 카드로 쓰겠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한미관계가 아니라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을 일부 감축하고, 해당 병력을 다른 곳에 배치할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에스퍼 장관은 육군청장 시절 해외 미군의 현황에 대한 평가서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최적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주한미군의 감축을 원천봉쇄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한미관계가 아니라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해외 미군 재편 계획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며 "내년도 국방수권법(NDAA 2021)에 의해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해당 법에도 예외는 있고, 가능성은 일단 열어둔 셈이다"고 설명했다.

국방수권법의 해당 내용은 NDAA 2020에서부터 이미 존재했다. 이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 과정 등에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파적인 합의 결과라는 평이 나오는 것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 오랜만에 한 줄 언급된 '사드'…컨테이너 숙소 등 열악한 현황 반영한 듯
52차 SCM 공동성명 6번의 내용
(전략) 양 장관은 동 공약의 일환으로 성주기지 사드 포대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하략)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에 관련된 내용은 2017년 49차 SCM 이후로는 공동성명에서 언급되지 않았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49차 SCM 공동성명 6번의 내용
양 장관은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민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 사드포대의 작전운용태세를 갖추도록 한 동맹의 결정을 평가하였다. 아울러 양 장관은 대한민국 국내법에 따라 관련 환경영향평가가 종결될 때까지는 사드 배치가 임시적임을 재확인하였다. 양 장관은 THAAD의 군사적 효용성을 강조하였으며, THAAD 체계가 오직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방어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어떠한 제3국도 지향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성주 사드 기지에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 것과 관련해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해당 기지가 오래돼서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장비 관련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포함됐다"며 "(사드 정식 배치 전에 이뤄져야 하는) 일반환경영향평가가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해당 기지의 숙소 시설 등은 2017년 사드가 임시 배치될 당시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급하게 만들어졌다. SCM 공동성명의 내용은 이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당장 추가 배치 등의 뭔가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어 보인다"며 "일반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야 기지가 정식 배치되는데, 급히 배치하느라고 소수 병력을 먼저 보낸 데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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