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조정래(소설가)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굵직한 작품을 써온 조정래 작가. 조정래 작가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굉장히 뜻 깊은 해인데요. 그런데 그 5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생각지도 못한 논란이 터졌습니다. 한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답이 나온 겁니다. ‘토착 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되어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고 모두 친일파가 된다? 무슨 말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좀 어렵다? 하면서 갸우뚱하셨던 분들이 많으셨을 거예요.
이 문장을 둘러싼 논란은 급기야 정치권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그러면 문재인 대통령 딸도 친일파냐? 이게 무슨 소리냐, 조롱하지 마라, 지나쳤다, 아니다, 이런 소모적인 논쟁들이 일파만파 번져가고 있죠. 그래서 이 최초 발언의 당사자가 말하고자 했던 진의를 좀 들어야겠습니다. 진의를 듣고 이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야겠습니다. 발언의 당사자, 작가 조정래 선생 직접 만나보죠. 선생님, 안녕하세요.
◆ 조정래> 네,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실은 등단 50주년 뜻 깊은 해여서 그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일로 모시게 돼서 착잡합니다.
◆ 조정래> 괜찮습니다.
◇ 김현정> 정리를 하고 가죠, 선생님, 그날 그 발언이 나왔던 자리가 기자 간담회 자리였던 거죠? 기자의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이셨을까요?
◆ 조정래> 그러니까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 이영훈이라는 사람이 선생님 문제를 진실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 김현정> 『반일민족주의』를 쓴 서울대 이영훈 교수.
◆ 조정래> 네, 그래서 제 대답이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아까 앵커께서 말씀하신 그 부분을 분명히 ‘토착왜구’라고 그 대상과 한정하고 제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이 가장 핵심적인 중요한 주어부를 빼버리고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전부 친일파 된다’는 식으로 그 문장만 집어넣어서 기사를 왜곡함으로써 이렇게 일파만파 오해가 생기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 김현정> 문장의 일부분이 생략된 채 보도된 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그렇게 보시는 거군요.
◆ 조정래> 당연하죠.
◇ 김현정> 그러면 당시 선생님의 발언을 그대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 기자회견 / 조정래 **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어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들을 일본의 죄악에 대해서 편들고 왜곡하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 자들을 징벌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적극 나서려고 합니다.
◇ 김현정>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어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들을 일본의 죄악에 대해서 편들고 왜곡하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 자들을 징벌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적극 나서려고 합니다.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 이것은 사회적,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다스려야 됩니다, 그런 자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네요.
◆ 조정래> 네.
◇ 김현정> 문제가 된 그 부분,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냥 딱 들으면 마치 일본 유학파는 무조건 친일파라는 건가 이렇게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조정래> ‘토착왜구’라고 하는 주어부를 빼지 않고 그대로 뒀다면 이 문장을 가지고 그렇게 오해할 이유가 없고 제대로 국어 공부한 사람은 다 알아듣는 이야기입니다. 토착왜구라 우리가 부르고 있는 그 사람들이 일본에 유학을 갔거나 연수를 갔거나 다 일본과 접촉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변질돼버렸거든요.
◇ 김현정>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다, 그 말씀이실까요?
◆ 조정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토착왜구로 부르지 않은 사람들 거기는 해당이 없고 일본 유학 갔다 와서 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강화된 분들 많겠죠. 따로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은 토착왜구가 아니죠.
◇ 김현정> 즉 약간 생략된 부분이 있겠네요.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돼 버렸던 그 사람들' 이렇게 해석하면 될까요?
◆ 조정래>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석이 정확하게 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더 이상 질문이 잇따라 나오지 않았던 것이죠. 다 고개 끄덕이고 수긍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일제강점기만으로 시기를 한정한 건 아니고요?
◆ 조정래> 아니죠. 지금 토착왜구라고 우리가 지칭하고,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 쓴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활동한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해방 이후에 지금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라니까요. 그게 더 문제가 있죠.
◇ 김현정> 토착왜구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 말씀. 사실 이게 문장 그대로 토착왜구를 생략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쭉 읽다 보면 오해의 소지는 있어요. 말을 글로 옮겨온 거다 보니까. 그래서 어떤 얘기들이 있었냐면 아니, 그러면 일제강점기에 조선 지식인들, 독립운동가들 중에도 일본으로 유학 다녀오신 윤동주 시인 같은 분도 계시고, 조정래 선생님의 아버님도 일본 유학 다녀오셨고.
◆ 조정래>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아니, 이런 독립운동가들도 유학 갔다 오셨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무슨 말씀이시지?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셨어요, 선생님.
◆ 조정래> 저희 아버님도 일본에 유학 갔다 오셔서 불교연구를 하고 돌아오셔서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300여 명의 승려 집단이 모여서 비밀 결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 김현정> 네.
◆ 조정래> 그리고 제 아버지는 거기서 평회원도 아니고 재무위원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더 강화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토착왜구짓을 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이런 비극적 사회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러면 선생님, 소모적인 논쟁들이 막 벌어지고 있는데 중요한 건 화자의 진짜 의도, 진의니까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씀, 생략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깨끗하게 말씀을 해 주시고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죠.
◆ 조정래> 저는 3, 40년 전부터 『아리랑』을 쓸 준비를 하면서 우리 민족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고 냉정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를 대하는 것이 지난 과거 역사의 문제를 전혀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마치 우리를 희롱하듯이, 무시하듯이 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정반대로 독일, 이스라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해 나가는 일을 보면 너무 명료하고 단호하고 철저하게 응징하고 처벌을 해 오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는 저렇게 못할까. 저렇게 해야 민족정기가 바로 서고 사회정의가 바로 서는 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말이 많은, 문제가 많은 것은 바로 그로부터 매듭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그런 맥락에서 일본은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하라. 또 우리 북한은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엄하게 하자는 글 많이 썼고 강연도 계속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토착왜구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엄단하기 위해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토착왜구들이 활동하는 것처럼 독일 히틀러 일당들이 저지른 그 거대한 인간 학살의 문제에 대해서 편들고 변명해 주고 합리화시켜주고 한다면 이스라엘인들이 가만히 두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엄히 해야만 역사 정의가 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고. 독립투사 한 분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감옥에서 돌아가시면서 남겨놓은 말씀이 있습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저는 『아리랑』을 쓴 이유가 그런 확고한 정신 밑에서 우리 민족의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기억 투쟁을 하기 위해서 『아리랑』을 써서, 제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계속 후배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12권의 소설을 쓴 것입니다. 그런 작가 정신에서 오늘과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어쨌든 이 진의가, 지금 말씀하신 이 진의가 잘못 전달이 되면서 마음에 상처 입은 분들이 계세요. 유학 다녀온 많은 분들, 전혀 민족 반역자 아니고 애국자인 많은 분들. 그분들께도 한 말씀하시겠어요?
◆ 조정래> 지금 언론의 왜곡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분들께서 잠시라도 기분이 언짢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으셨으면 제가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그분들에게 제가 신문을 대신해서 우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 언짢으신 걸 푸시고 제 진의를 제대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김현정> 네, 사실은 선생님께서 조금 더 그 부분을 내가 친절하게 했었어야 되는데, 라는 후회 같은 건 안 드시나 모르겠어요.
◆ 조정래>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현장에 판단력을 가지고 가장 예리하게 사물을 인식한다고 하는 계급이, 부류가 기자들입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 동의했습니다. 더 이상 이어진 질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언론이 그것을 왜곡해서 계속 이렇게 저를 괴롭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앞부분의 질문이 뭔가를 보니까, 『반일 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교수가 『아리랑』에 대해서 비판했던, 그러니까 『아리랑』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식으로 언급한 그 부분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이었더라고요.
◆ 조정래> 네.
◇ 김현정> 그 부분에 대해서 답을 하시는 과정에서 이 두 번째까지 이어지게 되는 거군요.
◆ 조정래> 네.
◇ 김현정> 그 맥락 속에서 들은 사람은 전혀 의아할 게 없었다?
◆ 조정래> 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해 주시겠어요? 이영훈 교수가 아리랑에 대해서 그 끌려가는 장면, 그게 사실이 아니다, 왜곡됐다 이렇게 책에 쓴 게 있지 않습니까?
◆ 조정래>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제가 그래서 이영훈 교수가 한 것을 말이 안 된다고 말로 하면 안 되겠어서 명예훼손 법적 책임을 물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시민 씨가 선생님 참으시라고. 선생님, 그 사람 말 믿을 사람 한 명도 없고 선생님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으니까 관두시라고. 그런 거 하게 되면 괜히 추하게 되니까 안 하시는 게 좋다고 그래서 제가 참았습니다.
◇ 김현정> 그러셨군요. 등단 50년 이야기를 해 보죠. 감회가 어떠십니까?
◆ 조정래> 제가 28살에 작가가 됐는데 50년 세월이 글을 쓰면서 흘러가리라고 전혀 못 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갖는 착각이고 교만이죠. 그리고 50년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니까 흔한 말로 시원섭섭한 것인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엇갈리는 감회들이 생기는데 정리가 잘 안 되고 그런 상태로 기자간담회를 했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은 아쉽고 허망하고 남은 세월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서운하고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 김현정> 50년간 선생님 작품을 꾸준히 사랑해 준 많은 독자들이 지금 듣고 계실 겁니다. 그분들께도 한 말씀하시죠.
◆ 조정래> ‘영토가 없는 왕은 왕이 아니고 신도가 없는 종교는 종교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자가 없는 작가는 작가일 수가 없는 거겠죠. 그런 등식으로 말을 하면 저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작가 생활을 지속해 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백산맥』을 많이 읽어주셨기 때문에 그 덕으로 『아리랑』을 쓸 수 있었고, 아리랑을 또 많이 읽어주셔서 『한강』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세월도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소설을, 글을 써 나가겠습니다.
◇ 김현정> 정말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남겨주시고요. 지금 의도치 않게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이 막 벌어지고 있어요. 이걸 보면서 얼마나 속상하실까 싶은데 정치권에도 한 말씀하시겠습니까?
◆ 조정래> 정치권에서 사실 확인을 저한테 하지 않은 채로 신문 보고된 것만 가지고 말을 하니까 시끄러워지더군요. 오늘부로 그러한 소모적인 논쟁 그만하시고 그야말로 민생을 위한, 국민 전체를 위한 민생 국회로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김현정> 확인하는 전화 한 통도 안 왔습니까?
◆ 조정래> 네, 안 왔습니다.
◇ 김현정> 아니, 당사자에게 진의를 묻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 조정래>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저를 비난하고, 심지어 대통령 딸까지 끌어다가 조롱하고 그랬는데 그 사람도 사실 확인 하지 않았습니다.
◇ 김현정> 전화 한 통화만이라도 좀.
◆ 조정래> 그래서 저는 지금 그 사람한테 공개적인 진정어린 사죄를 요구합니다. 만약에 하지 않으면 작가의 명예를 훼손한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늘 말씀 듣도록 하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 조정래> 네.
◇ 김현정>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발언, 그 발언이 지금 일파만파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당사자가 얘기하고자 했던 진의는 뭔가 오늘 좀 들어봤습니다. 조정래 선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