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결정전 때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많이 당했거든요. 한때 가장 싫어했던 선수가 양동근 선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동근이 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네요"
프로농구 원주 DB의 MVP 출신 가드 두경민에게 2015년 챔피언결정전은 잊고 싶은 기억이다.
당시 울산 현대모비스는 챔피언결정전 무대에서 DB의 전신인 동부를 만나 4전 전승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양동근은 당대 최고의 가드였다. 4경기 평균 20.0득점, 4.8어시스트, 4.8리바운드를 기록해 패기만 가득 넘쳤던 두경민과 허웅의 동부 백코트를 그야말로 압도했다.
두경민은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시즌 프로농구 현대모비스와의 원정경기를 마치고 이날 은퇴 행사에 참석한 양동근에 대한 속내를 털어놨다.
"대학 때부터 제2의 양동근이 돼야 한다는 소리를 엄청 많이 들었다"는 두경민은 프로 초창기에 겪은 챔피언결정전의 기억 때문에 양동근을 좋아하기 어려웠다.
개인에 대한 악감정 때문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프로 선수로서 갖고 있는 내면의 경쟁심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존경과 존중의 마음은 당연히 컸다. 그는 챔피언결정전 이후 양동근이라는 대선수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두경민은 "지금은 제가 동근이 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며 "정말 존경한다. 같은 시대를 뛴 것 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DB의 국가대표 빅맨 김종규는 양동근에 대한 기억을 묻자 "제 인생을 바꿔 준 패스 한방이 동근이 형 손에서 나왔다"며 웃었다.
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경기 막판 역전 결승득점을 합작했다. 양동근이 돌파 후 골밑에 있는 김종규에게 절묘한 패스를 내줬고 김종규가 침착하게 성공시켜 남자농구 대표팀의 금메달을 견인했다.
"대표팀 생활을 워낙 오래 같이 해 형과는 같은 팀이라고 생각했다"며 미소를 지은 김종규는 "우리는 양동근 시대에 농구를 했다. 함께 해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선수 전원은 양동근의 은퇴 행사를 기념해 유니폼에 자신의 이름 대신 양동근의 이름을 새기고 뛰었다.
김종규는 "'양동근 효과'가 대단했다. 모든 선수들의 유니폼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어 위축됐다"는 농담을 건네며 웃었다.
하지만 양동근이 구단과 농구 팬에게 작별을 고한 날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모비스는 가드진 싸움에 밀려 DB에 77대82 역전패를 당했다.
두경민은 19득점 3어시스트로 활약했고 김종규는 12득점 6리바운드를 올렸다. 저스틴 녹스는 28득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하며 DB의 개막 2연승을 이끌었다. 현대모비스는 개막 2연패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