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사건 경위를 설명하면서 보고한 민감한 특수정보(SI)들이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공개되면서 군의 첩보 수집 능력, 나아가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군 "첩보 무분별 공개, 안보에 도움 안 돼"
지난 4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상부에서 '762 하라'고 지시했다. 북한군 소총 7.62mm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사살하라는 지시가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국가정보원 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762'라는 것이 특수정보(SI)에 근거한 건지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SI(Special Intelligence)란 감청, 위성 촬영 등을 비롯한 기술정보(TECHINT), 스파이나 협조자 등을 동원하는 인간정보(HUMINT) 등의 특수한 방법으로 수집된 첩보를 의미한다. 특성상 정확한 수집 방법이 알려질 경우 정보원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 군 당국은 현재까지 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다음 날인 5일 국방부는 이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문홍식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주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군의 민감한 첩보사항들이 임의대로 가공되거나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우리 군의 임무수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이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7일에는 군이 사진 형태로 사살 현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며 신중을 기해 사실에 대해 보도해 달라"며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다.
29일과 30일에도 국방부는 우리 군이 실시간 감청을 통해 북한군이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우리 군이 획득한 첩보 내용에서 '사살'을 언급한 내용은 없었다"고 해명해야 했다.
군 당국이 당황해하는 이유는 국방부와 국가정보원 등이 정보 사항을 국회에 보고하고 나면 언론에 계속 유출돼 첩보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측 언론 보도를 통해 어떤 정보가 유출됐는지를 알게 되면 각각의 정보가 오고갔던 통신의 암호, 주파수 등을 바꾸거나 정보원 색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우려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의 방첩기관이 실제로 하는 업무다.
군 당국은 감청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 현지 정보원 등을 운용하는 정보부대 등을 통해 대북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밖에도 미군의 첩보위성이나 남한 상공 등에서 활동하는 미군 정찰기 등이 확보한 첩보를 분석하는 작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 해프닝 당시에도 한미 정보당국은 그의 신변에 이상이 없으며 원산 일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내용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여부나 위치 등은 북한 내부에서도 특급 기밀에 속하는 사항이다. 이를 우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알려진다면 실제로 첩보전, 나아가 국가안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일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이미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지만,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일본에 알려지는 순간 암호를 바꿀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군은 1943년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제거하기 전, 그의 죽음으로 야마모토 제독의 스케줄과 관련된 암호 해독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사리 암살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영국은 독일군의 암호기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했다는 사실을 전쟁이 끝나고 수십년 뒤까지 비밀로 유지했다.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보고받는 국회의원들은 보고 전 보안서약서를 쓰는 등의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안 유지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위원회의 경우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회의가 끝나고 여야 간사간 합의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일부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한다. 정보 공개가 어느 정도 필요한 측면은 있지만, 명확히 정해진 기준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육군 중장 출신의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5일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SI라는 것 자체가 출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선 그 자체를 밝혀서는 안 된다"며 "대외적 보안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야기하는데 좋은 현상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한 국방위원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얘기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루뭉술하게 표현해야 하며 정확한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첩보 유출이) 안보에 대해 악영향을 크게 주는 것이 사실인데, 현재로서는 의원들의 양식에 맡길 뿐 국회가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며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방부 대북정책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비공개로 보고받기로 한 사항은 비밀을 지켜야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는데 정치권이 보고 내용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면서 군사정보 수집 능력이 공개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며 "이런 정보는 공식적으로 진위를 확인할 수 없기에 아주 나쁜 사례가 된다"고 비판했다.
2009년 국회 연구용역보고서 '정보보안을 위한 국회 정보위원회 내 대책수립방안'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엔 상원 정보위원회 등에서 보고된 기밀정보가 유출되는 경우 상하원 윤리위원회 등이 이를 조사할 수 있다. 정보를 보고받은 의원이 이를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할 때에도 엄격한 기준을 두는 등의 내용이 정보수권법(Intelligence Authorization Act)에 규정돼 있다.
건국대 안보재난안전융합연구소 문승남 선임연구원은 2018년 박사학위 논문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국회의 기밀정보 누설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보안유지 방안이 필요하다"고 이러한 대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정보공개 운영세칙을 보다 전향적으로 개정하고 공개정보의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당리당략에 따라 기밀정보가 누설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보기관과 정보위원회는 정보업무의 비밀성을 고려하되 알 권리 보호 차원에서 관련 정보의 공개를 확대해 국민들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정보위에서 논의된 사안의 외부 공개에 대한 보다 명확한 지침 마련이 선행돼야 하고 정보기관의 비밀자료 해제 규정을 전향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