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전화만 하면…" 대형버스 기사 된 전직 조종사

14년차 전직 이스타항공 기장 김모씨
생계 위해 대형버스 면허에 택시, 화물차 면허까지 따
"신입으로 재취업 사실상 불가…알바도 하루 일하고 잘려"
전직 이스타 직원들, 명절에도 자격증 공부하며 재취업 '안간힘'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쓰다 한계가 오자 가지고 있던 차를 팔았다. 그 돈으로 빌린 돈을 갚고 두 달을 버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쿠팡 새벽배송은 남는 게 많지 않아 한 번 하고 그만뒀다. 조립식 가구 배달일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하루만에 잘렸다.

14년간 비행기를 몰던 경력이 하루 아침에 쓸모 없어지자 전직 조종사인 김모(54)씨에게 남은 건 취업이 버거운 나이뿐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행사가로 2만원 할인된 69만원을 내고 지난달 대형면허를 땄다.

면허가 있다고 바로 버스를 몰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면허를 취득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나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그는 부랴부랴 택시 면허도 땄다. 지금은 화물차운송자격증까지 따고 화물 배송일을 알아보는 중이다.

국회 앞에서 이스타항공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중인 전직 기장 김모(54)씨.(사진=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제공)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부모님 뵐 면목은 없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이번 명절은 고향집에 내려가는 대신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전화만 하면 우시니까…통화하기도 그래요. 엊그저께 전화만 하고 말았어요."

◇대책위 단톡방엔 "배고프다"·"15끼니째 라면만 먹는 중" 글 계속 올라와

"막막하긴 하죠. 멍하게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보려고요."

해고 통보를 받은 4년차 부기장 정모(33)씨는 이번 명절에 IT 관련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다.

맞벌이지만 전세대출금 이자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아내에게 미안해서라도 이번 명절때는 코로나 핑계로 사람 안 만나고 안 나가면서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다.

정씨는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전공을 살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재취업을 준비중"이라며 "부모님도 오지 마라고 부담을 안 주려 하시니 죄송하다"고 말했다.

30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에 따르면 8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해고 노동자들은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와 대리기사, 방송보조출연 등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추석에는 일감이 없어 생계가 막막한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대책위 단톡방에는 15끼니째 라면만 먹고 있다거나 배고프다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항공기 6대를 관리할 정비사 500여명은 아직 회사에 남아있지만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월급을 받지 않고 출근하고 있다"며 "급여는 안 나오는데 매일 출근해야 하니 알바를 해 생활비를 벌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정부여당이 이스타항공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이스타항공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8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 이전부터 완전 자본잠식 상태라 직접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기금 지원 요건도 충족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3일부터 국회 앞에서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중단과 정부의 적극 해결을 촉구하는 무기한 농성을 진행중인 노조는 추석에도 농성을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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