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은 부임 첫해였던 2019시즌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서 베테랑 외야수 추신수를 제외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상대팀 시카고 컵스는 좌투수 존 레스터를 선발로 내세웠고 왼손타자 추신수는 왼손투수에게 약했다. 또 텍사스는 새로 가세한 헌터 펜스의 빠른 적응을 위해 개막전 지명타자 자리를 그에게 맡겼다.
하지만 개막전 선발 라인업은 모두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오랫동안 팀에서 헌신한 베테랑에게는 더욱 그렇다.
추신수는 우드워드 감독의 결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드워드 감독은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우드워드 감독은 약 일주일이 지나 공개적으로 추신수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추신수에게 개막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지 못했다. 그는 자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언론은 선수 기용과 관련한 사령탑의 사과가 이례적인 일이라며 주목했다.
추신수는 2014시즌을 앞두고 텍사스와 7년간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526억원)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추신수는 2013시즌 신시내티 레즈에서 타율 0.285, 21홈런, 54타점, 107득점, 20도루를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텍사스는 선구안과 파워를 모두 갖춘 추신수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추신수는 2014년부터 작년까지 6시즌동안 타율 0.261, 109홈런, 340타점, 451득점, 출루율 0.365를 올렸다. 2018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추신수는 텍사스의 1번타자, 리드오프로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지만 몸값을 감안하면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계약 후 세번째 시즌이었던 2016년에 48경기 출전에 그쳤던 게 아쉬웠다. 이후 추신수는 매년 늘어나는 나이와 싸워야 했다.
이는 지난 몇년간 끊임없이 이적 루머가 돌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추신수에게 올해는 더욱 아쉽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즌 일정이 단축됐는데 부상 때문에 절반 수준인 33경기 출전에 그쳤다. 계약 마지막해에 타율 0.236, 5홈런, 15타점을 올렸다.
텍사스와 추신수와 계약을 연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근 4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이제는 젊은 선수 위주로 전력을 개편해야 할 시기다.
그래도 텍사스 구단과 우드워드 감독은 오랜 기간 팀에 헌신한 베테랑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1년 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추신수는 이달초 손목을 다쳐 부상자 명단에 올렸다.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정상적으로 스윙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텍사스는 28일(한국시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앞두고 추신수를 복귀시켰다.
그리고 우드워드 감독은 추신수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했다. 추신수는 텍사스에서의 마지막 타석을 대타로 나서게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우드워드 감독은 그동안 리드오프로 뛰어온 추신수에게 익숙한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존중을 표시한 것이다.
관중석에는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와 자녀들이 앉아있었다. 가족의 방문은 추신수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는 무관중으로 진행됐지만 텍사스 구단이 추신수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타석에서 추신수의 선택지는 번트가 유일했다. 아직 손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1회말 첫 타석에서 3루 방면으로 절묘한 번트를 댔고 전력질주 끝에 내야안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발목을 다쳐 곧바로 교체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추신수가 텍사스에 입단한 2014년에 텍사스에서 데뷔한 루그네드 오도어는 가장 먼저 달려와 추신수와 인사를 나눴다.
오도어는 경기 후 MLB닷컴을 통해 "추신수는 내가 만난 최고의 동료 중 한명이다. 그는 언제나 주위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선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도어의 말은 사실이다. 추신수는 늘 동료와 잘 지냈고 때로는 존경의 대상이 됐다.
추신수는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마이너리그가 중단돼 선수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거 191명에게 각각 1천달러(약 118만원)를 기부했다.
텍사스는 선행으로 사회에 공헌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2020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후보로 추신수를 추천했다. 수상자는 월드시리즈 기간에 발표된다.
구단과 감독, 동료들의 극진한 예우 속에 정규리그 최종전을 마친 추신수는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추신수는 "한손으로 방망이를 잡기도 어려웠고 스윙도 힘들었다. 오늘 경기를 뛴다는 게 바보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며 "젊은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내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경기에 나서고 싶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텍사스에서 머물렀던 지난 7년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힌 추신수는 현역 연장의 꿈을 위해 다시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