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지난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해수부 공무원 이 씨 피살사건. 여전히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우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하는 걸 찾아보자면 예상을 깨고 북한이 사과를 했다는 점 이거고요. 다만 사람이 죽었고 그래서 사망의 경위를 밝혀야 하는데 지금 이 씨 사망에 대한 사망 과정에 대한 게 우리 정부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공동수사를 하자고 요청을 했습니다마는 지금 북한이 15시간째 답은 안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시신 수색하다가 NLL 넘으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한 상태죠. 북한의 태도 그리고 앞으로의 남북관계, 이분과 함께 분석해 보겠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자문위원이세요. 조성렬 박사 연결이 돼 있습니다. 조 박사님, 안녕하세요.
◆ 조성렬>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사실 ‘사과를 안 할 거다. 혹시 나오더라도 유감 정도 나오지 않겠느냐?’ 이런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비교적 빠른 사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 조성렬> 우선은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공개 사과를 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 김현정> 그렇죠.
◆ 조성렬> 김정은 위원장은 2014년도에 평양에 있는 고층 건물 공사장이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사과한 적이 있었고요. 2017년 1월 신년사에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먼저 통치 스타일도 그런 게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시신 총격도 문제지만 특히 시신을 소각한 것에 대한 우리 한국 국민들의 감정들이, 여론이 굉장히 악화됐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무마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월 7일로 알려져 있는데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한 그리고 이른바 10월에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마는 옥토버 서프라이즈 가능성, 이런 것 때문에 북미 간에 뉴욕 채널이 가동되고 있었거든요. 이런 부분들로 인해서 사태를 조기 수습해야 된다, 이런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 조성렬> 네, 이미 서훈 안보실장님이 밝혔듯이 9월 들어서 두 차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친서가 있었고 또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친서, 답서가 왔다는 걸 공개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제 남북 간의 신뢰가 만들어지고 다시 복원되고 있었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은 이걸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렇다면 그걸 바탕으로 한다면 이번에 우리 공무원 이 씨 사살을 정말 김정은 위원장이 몰랐던 것인가? 몰랐다고 보시는 거예요?
◆ 조성렬> 사후에는 알았겠죠. 사후에는 알았을 거라고 보는데.
◇ 김현정> 물론 사후에는 알았겠습니다마는 보고 과정에서?
◆ 조성렬> 그 과정에서 보면 이미 지난 6월 13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대남관계를 대적 관계로 규정한 이후에 대적 행사권을 총참모부에 위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6월 17일 총참모부가 담화를 통해서 대적 군사행동 계획을 공개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상당 부분 군부에 위임됐을 가능성이 있고요.
그리고 특히 8월 이후에는 접경지역에서 밀입국자라든지 불법침입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살한다는 포고령이 내려진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의 아마 감청 자료로 보이는데요. 지금 북한의 해군 단속정하고 또 북한의 해군사령부 간에 통화 내용들이 아마 감청된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는 확인이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해군 계통의 지시로 사격 및 소각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이렇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까지는 보고가 안 갔고 지시가 내려져서 사살된 건 아니라고 보신단 말씀이에요.
◆ 조성렬> 네. 그러니까 이미 6월에 군부에 위임이 됐고 8월에 사살이라는 전면적인 공개 포고령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김 위원장까지 안 가더라도 군부에게 권한이 위임된 상태였다는 것이죠.
◇ 김현정> 그러면 김여정 부부장도 몰랐고요?
◆ 조성렬> 김여정 부부장도 사후에는 알 수 있었지만, 이미 권한을 위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김여정 제1부부장의 동의가 필요하거나 결정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죠.
◇ 김현정>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한의 공무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공무원이라는 신분까지는 안 밝혔다 치더라도 남한 사람이라고 했을 경우에 사살이 이루어지면 어떤 상황으로 확대 되는지를 군부도 알았을 텐데요. 그런데 최고 지도부의 지시 없이 사살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 하나하고요. 또 발견 후에 6시간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까? 6시간 동안 논의 과정에서 최고지도부까지 보고가 안 갔을까? 이게 좀 갸우뚱해요.
◆ 조성렬> 우리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2013년 9월에 우리 국민 한 분이 한강을 넘어서 북쪽으로 월북하려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우리 군부대에서 중지 명령을 내렸는데 응하지 않자 수백 발을 쏴서 결국은 그분이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예를 들면 청와대라든지 또는 합참이나 지시를 받았다는 정황은 전혀 없습니다. 이미 말단 부대에 부대장에게 일정 정도 내용이 위임된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걸 그렇게 보기는 어렵고요.
◆ 조성렬> 그러니까 지금 북측에서 통지문 내용도 보면 ‘우리 지도부가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해서 설명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북측에서의 흐름으로 보더라도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첩보로 보더라도 그 이상의 상부로 간 것 같지는 않다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이 핫라인인데요. 금요일 오전에 북한의 사과통지문을 핫라인을 통해서 받은 게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박지원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서 그 통지문을 받았다’라고 지금 말을 한 상태이고요. 그렇다면 결국 다 끊어진 줄 알았지만 우리 국정원과 북한 통전부 사이의 핫라인은 존재했던 거 아니냐, 이렇게 유추가 되고요. 그렇다면 6시간 동안 우리 국민이 바다 위에 떠 있을 때 그 핫라인을 통해서 북한에다가 얘기를 할 수는 없었던가? 질의를 할 수는 없었던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보세요?
◆ 조성렬> 북한이 지난 6월 9일 12시를 기해서 모든 남북 통신연락소를 단절한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루어진 부분이 서해와 동해의 군통신선이고 그리고 이제 개성 연락사무소 같은 남북통신연락선, 그리고 함정 간의 상용 주파수망 이런 걸 다 끊었고 무엇보다도 판문점 선언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와 노동당 청사 간의 핫라인도 끊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게 두 개가 있습니다. 이거는 아마 전쟁을 하더라도 남아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그게 바로 우리 국정원하고 통전부 간의 핫라인이 있고요. 또 하나는 UN사 군사정전위원회하고 북측 판문점 대표부 간의 핫라인이 있습니다. 이 두 개는 어떤 경우든 살아 있습니다.
◇ 김현정> 두 번째 거는 알고 있습니다마는 첫 번째도 전쟁이 나도 우리 국정원하고 북한 통전부 사이에는 핫라인이 살아 있어요?
◆ 조성렬> 네, 지금 전쟁이라는 상황은 아닙니다마는 이 부분은 사실 북한이 모두 단절했다고 했을 때도 저도 여러 번 얘기한 적 있습니다마는 국정원과 통전부 핫라인은 원래 살아 있다, 이런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그걸 이번에 이용했으면 안 됐을까요? 왜냐하면 굉장히 초기에 그 사람이 ‘우리 공무원 이 씨구나’라는 걸 우리 군이 알았다는 거니까, 특정이 됐다는 거니까. 사살까지 최소한 5시간이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때 질의라도 한번 ‘우리가 알고 있다, 그 사람이 공무원이냐. 확인 좀 해 달라, 실종됐다.’ 이런 걸 보낼 수는 없었을까요?
◆ 조성렬> 그게 밝혀진 것이 9월 22일, 그다음 날 한 28시간이 지나서 아마 우리 쪽 군 통신감청부대가 감청을 통해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최종적으로 사망까지 한 6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요. 중요한 부분은 통신감청부대는 말 그대로 특수 정보, 그러니까 SI첩보라고 하는데요. 이 첩보를 탐지만 하는 겁니다. 탐지해서 물론 보고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게 첩보하고 정보는 다른 거거든요. 그러니까 첩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들을 파악해서 확정짓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 나중에 보면 백조정찰기나 금강정찰기 그다음에 미국의 정찰위성,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정보로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정보로 만들어진 부분은 사실 사망한 이후. 사격으로 사망한 이후 그다음 날 새벽 1시부터 2시 반 사이에 걸쳐서 취합된 첩보들을 모아서 정보로 최종적으로 판단한 겁니다.
◆ 조성렬>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 부분은 뭐냐면 1983년 9월에 대한항공 007기가 뉴욕에서 김포로 오다가 러시아 영공으로 잘못 진입을 해서 결국 격추돼서 사망한 바가 있거든요. 당시 269명이 사망했는데 사실 미국이 2시간 정도 영공을 들어갔기 때문에 미국이 다 파악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우리한테 알려주지도 않았고요. 그다음에 당시에 대한항공에는 미연방 하원의원이 한 명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도 돌아가셨는데요.
왜냐하면 사건이 나기 전에 미리 얘기할 경우 우리의 정보 자산, 첩보망들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보통 공개를 하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 정보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확정짓지 않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첩보일 경우는 상대방이 역정보나 거짓 정보를 흘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그걸 잘못 알고 실제로는 아니었는데 우리 측 민간인 또는 공무원이 북측 지역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군사 작전했다가 사실이 아닐 경우는 우리가 북측을 공격한 게 되거든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조 박사 생각에는 질의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정보가 아니었다, 그런 말씀이신 거예요. 지금 나오는 얘기로는 감청 정도가 아니고 우리 군이 사진으로 확보를 했다라는 이야기도 나와요. 이거 어떻게 파악하고 계세요?
◆ 조성렬> 아까 말씀드렸듯이 금강정찰기라고 해서 우리 군이 운용하는 영상정보를 확보하는 게 있거든요. 아마도 지금 합참의 발표를 보면 일단 우리 측 인원이 NLL 북측으로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에는 금강정찰기라든지 또는 미국의 정찰위성이 떠서 아마 영상을 확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유물에 일부 떠 있다, 이런 얘기가 나온 걸 보면요. 그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면 중요한 게 김정은 정권 이후 우리 국민이 월북한 사건이 9건에 15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판문점을 통해서 우리 쪽으로 다 인계를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북측에서는 사실 우리가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잔류를 희망하더라도 대부분 다 돌려보냈습니다.
◇ 김현정> 이번에도 돌려보낼 거라고. 그러니까 이런 짓까지 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이런 판단 착오가 있었다.
◆ 조성렬> 그러니까 서욱 국방장관이 얘기를 했었죠. ‘사살할 건 생각을 못 했고 만약에 북측에서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돌려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얘기를 국방장관께서 하셨습니다. 아마 그런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런 상황으로 조 박사께서는 판단하고 계시고, 하나만 질문 드릴게요. 지금 ‘공동조사라고 하자’라고 우리가 제안을 던졌거든요. 이걸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서 또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 조성렬> 일단은 북측이 추가 조사를 하고 있고요. 또 우리 측 입장과 북측 입장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단 추가조사를 하는데 일단은 우리가 요구하는 공동조사, 또 하나는 군통신망을 다시 재개하자는 부분인데 이런 부분들에서 군 통신망 재개를 해야만 공동조사도 가능한데 북한이 아마 쉽게 받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북한군의 관할지역이기 때문에 과거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사건 때도 군사지역에 대해서는 공개를 안 했거든요. 그래서 쉽지는 않을 거라고 보지만 이걸 계기로 해서 일단 단절된 군 통신선을 복원한다 하더라도 큰 성과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여기까지 말씀 듣죠. 조성렬 박사님, 고맙습니다.
◆ 조성렬>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