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6시간…軍, 생존 확인하고도 왜 아무것도 안 했나

실종 공무원 억류 정황 확인했지만 송환 요구 등 적절한 조치 안 해 논란
결과적으로 6시간 후 북한군이 무참히 사살
야당 "왜 통일부와 협의해 구조나 송환 요구 안 했나" 질타
서욱 장관 "북한이 구조해서 송환하는 절차 밟을 것으로 생각"
군 당국 "실시간 상황 파악 아냐…첩보 확인에 시간 소요" 해명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 해상에서 표류한 채 억류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우리 군 당국이 송환 요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실종자는 북한군의 총에 맞아 처참하게 살해됐고, 문제의 6시간 동안 군 당국이 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당시 사건이 NLL 북측 해역에서 발생한 터라 우리 군이 실시간으로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사건의 재구성 : 문제의 6시간, 군은 "북한이 설마 그러리라고는 예측 못했다"

연평도 실종 공무원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사진=연합뉴스)
21일 실종된 A씨의 행적을 군이 다시금 알게 된 것은 다음 날인 22일 오후 3시 30분쯤이다.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황해남도 강령군 등산곶 근처 바다에서 실종자를 발견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어 오후 4시 40분쯤 이 선박에 탄 북측 인원이 A씨로부터 실종 경위와 월북 의사에 대한 진술을 들었고, 그로부터 5시간쯤이 지난 오후 9시 40분쯤 총격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6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군이 실종자가 생존해있음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NLL에서 3~4km 정도로,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지점이었다.

서해를 지키는 해군 고속정(사진=연합뉴스)
24일 오전 언론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6시간 동안 군이 대응하지 못한 이유를 지적하자 군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한 곳은 NLL 북쪽의 북측 해역이었으며, 당시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고, 북한이 그러한 만행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몇 시간 뒤 북한이 설마 우리 국민을 사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군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면서도 "우리 측 첩보 자산이 드러날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 이를 바로 활용하면 앞으로 첩보를 얻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군은 22일 오후 3시 30분쯤에 입수한, 실종자와 관련된 첩보를 당시 시점에서 A씨와 직접적으로 연관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간에 누군가가 해당 해역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맞지만, 당시 북한 해역이라는 점 등 때문에 이 실종자가 A씨라고 확정짓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해 우리국민 실종사건 관련 브리핑하는 안영호 작전본부장(사진=연합뉴스)
군은 오후 4시 40분쯤 A씨가 북측에 표류 경위와 월북 의사에 대한 진술을 하던 시점에서 해당 실종자를 A씨라고 특정할 수 있는 정황을 확인했다. 이후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분석한 뒤, 3시 30분에 처음 정황을 포착했던 실종자가 A씨와 동일 인물이라고 최종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군이 몇 시간 동안 북한군의 만행을 정말로 예측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이미 지난 10일(현지시각)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열린 화상회의에서 "북한이 북중 국경에 특수부대를 배치해 사살 명령(shoot-to-kill order)을 내렸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북중 국경지역에서 미확인 인원을 사살한 사례는 있었다"면서도 "당시에는 북한이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A씨를 살해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야당 "왜 통일부와 협의해 송환요구 안했나" 질타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4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보고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이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통일부와 빨리 협의해서 '우리 국민이 실종됐으니 빨리 구조해달라'고 전통문(대북통지문)을 보내는 등 빨리 움직였으면 적어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며 "만약 저체온증이나 기타 이유로 돌아가셨다면 최소한 시신이라도 온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고 늑장대응을 질타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긴급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이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당시 가지고 있는 첩보의 양이 정확하게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결과론적으로 이렇게 됐지만 거기서 구조되어서 송환한다든가 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북한이 A씨를 살해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는 군 관계자의 답변과 궤를 같이한다.

◇첩보 출처 함구한 군…전문가 "역정보 가능성 있어, 검증 없이 작전했다가 잘못하면 우리가 책임"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그러면서 국방부는 실시간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방부는 24일 저녁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오늘 발표한 내용은 직접 목격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원거리 해역에서 일어난 일을 다양한 첩보를 종합 판단하여 재구성한 것이다"며 "북한 해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군은 이같은 첩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정황상 신호정보(SIGINT) 등의 정보자산을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문제의 22일 오후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과 해군 단속정이 A씨와 관련된 내용을 무전 등의 수단으로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 정보자산에 포착됐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시점에서 이렇게 입수한 첩보가 허위정보나 역정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24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도감청이 쉬운 만큼 상대방이 엿듣는다고 생각을 해서 거짓정보나 역정보를 흘려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며 "연평도에서 시신을 태우는 불빛이 확인됐기 때문에 (나중에) 확인이 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통화에서 "만약 감청 결과만 가지고 (우리 군이 NLL 북쪽에서) 작전을 했다가 해당 첩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며 "현실적으로 해당 상황과 해역에서 군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10시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우리 군이 직접 관측한 것이 아니라 첩보를 통해 재구성했기 때문에, 자연히 이 정보들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군이 작전을 하는 데도 제한이 따른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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