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고 기자의 사후담>
■ 채널 : 표준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20년 9월 23일(수)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CBS 고상현 기자
◇ 류도성> 제주지역의 사건‧사고 뒷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고 기자의 사후담' 시간입니다. 오늘도 고상현 기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고상현> 안녕하세요.
◇ 류도성> 오늘은 어떤 주제 들고 오셨나요.
◆ 고상현> 지난주 목요일(17일)이죠. 법원에서 두 건의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대해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한 사건은 제주대학교 교수가 제자를, 또 다른 사건은 해경 함장이 직원을 상대로 한 범죄였습니다. 오늘 그 재판 뒷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 류도성> 권력형 성범죄 사건. 우선 두 사건에 대해 잘 모르시는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각각 어떤 사건이었는지 설명해주시죠.
◆ 고상현> 네. 제주대학교 교수 사건의 경우는 언론을 통해 경찰 수사 단계부터 알려지고 재판 내내 화제가 됐는데요. 제주대학교 교수이자 모 학과의 학과장이었던 60살 조 모 교수가 23살 여성인 제자를 상대로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 류도성>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크게 이슈가 됐었죠.
◆ 고상현> 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피해자는 조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는데요. 별다른 친분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30일 피해자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한다는 사실을 전해서 들은 조 교수가 피해자를 연구실로 불러내 면담을 합니다. 그런 다음 피해자에게 마지막으로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안해 그날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함께합니다. 그 자리에서 피해자는 매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조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위로해줬다고 합니다.
◇ 류도성> 지금까지는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교수의 모습인데요. 언제 돌변하나요.
◆ 고상현>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후 자리를 옮긴 제주시 한 노래주점에서 상황이 바뀝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제자를 걱정했던 교수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조 교수는 피해자에게 "처음 봤을 때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꼰 모습이 당당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고요. 유사강간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두 차례 방에서 나왔지만, 조 교수는 억지로 데려와서 범행을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며 "싫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200여 차례 말했지만, 조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 류도성> 재판부가 조 교수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죠? 형량이 가볍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 고상현> 네. 이번 사건의 경우 대법원 양형기준에서 정한 권고형은 징역 2년에서 징역 3년 4개월 사이입니다. 구체적인 양형 사유를 보면요.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질병과 경제적 형편으로 겨우 이어나가던 학업을 포기하는 등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뽑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학교 학생들이 대학 내 교수와 제자 사이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 각종 부조리와 불평등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엄벌을 바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 류도성> 제주대 교수 사건은 이렇고요. 이제 두 번째로 해경 함장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나요?
◆ 고상현> 피고인 54살 전 모 씨는 제주해양경찰서 소속 경비함정 함장이었던 지난해 6월 25일 밤 제주시 한 편의점 야외테이블 등지에서 부하 순경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전씨는 당시 전체 직원 회식이 끝난 자리에서 술에 취해 범행했는데요. 유부녀였던 피해자에게 "뽀뽀하고 싶다, 예쁘다"라고 말하며 수차례 추행했습니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해경은 전씨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고, 지난해 10월 해임했습니다.
◇ 류도성>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 고상현>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지만, 업무 관계로 감독받는 위치에 있는 피해자를 위력으로 추행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류도성> 두 사건 피고인의 경우 사건 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와 합의하려고 했다면서요.
◆ 고상현> 네. 그렇습니다. 제주대 조 교수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 조건으로 해외 유학생으로 추천해주겠다고 했다가 피해자가 거절했는데요. 재판부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피고인 자신의 능력으로 피해자와 합의하려고 노력해야지, 대학 장학 제도를 들먹이느냐"고 일갈했습니다. "공적인 제도를 개인 구제에 이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생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 아니냐"고 꾸짖기도 했습니다.
◇ 류도성> 해경 함장이었던 전씨는 어떻게 했나요.
◆ 고상현> 전씨도 피해자와 합의 과정에서 합의에 응해주면 근무성적 평정에서 최고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전씨에게 "객관적으로 점수를 줘야 하는데, 왜 그렇게 얘기했느냐. 다른 사람의 승진 기회를 빼앗는 행위 아니냐"고 질타했습니다. 피해자는 전씨의 제안에 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엄벌을 원한다고 탄원했습니다.
◇ 류도성> 두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으로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벌어졌어요.
◆ 고상현> 네. 두 사람은 장소와 직위만 다를 뿐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력을 지닌 갑이 을을 상대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가슴 아픈 점은 피해자의 고통은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 교수 사건 피해자는 "학교에 다녀도 조 교수가 쓴 교과서를 보고 공부해야 하지 않느냐"며 어렵게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고요. 해경 함정 사건 피해자는 다른 지역으로 인사 발령 났지만, 조직 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주여성인권연대 송영심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녹취 : 송영심 대표] "어떤 조직이든 권력이 있고, 그 권력 안에서는 위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 위력을 성인지적으로, 성 평등적으로 행사하고 있는지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가부장적이고 여성을 부차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조직에서 배척당한다든지 2차 피해를 겪기도 해요. 사회와 조직 문화를 변혁하지 않으면 비슷한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요."
◇ 류도성> 두 사건 피고인 모두 항소했죠?
◆ 고상현> 네. 그렇습니다. 특히 조 교수에 대한 제주대학교의 징계 절차가 남아 있는데요. 조만간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징계 결과도 전해드리겠습니다.
◇ 류도성> 지금까지 고상현 기자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