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디즈니의 허상?…속 빈 '정치적 올바름'

'뮬란', 중국 내 소수민족 인권탄압 벌어지는 곳에서 촬영해 논란
디즈니, 그간 영화·캐릭터 통해 성·인종·계급 차별과 편견 깨뜨리는 행보 주목
'백인·남성·서구'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非백인·여성·다문화' 전면에 등장
'뮬란', 그간 추구해 온 '정치적 올바름' 틀에서 벗어났다는 비판 봇물

영화 '뮬란' 속 한 장면(사진 왼쪽)과 '뮬란' 보이콧을 촉구하고 있는 홍콩 '우산 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조슈아 웡 트위터)
성·인종·계급 차별에 반대하고 문화 다양성을 추구해 온 월트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은 그저 '허상'에 불과했던 걸까.

디즈니가 올해 처음 선보인 라이브 액션 '뮬란'이 거듭된 악재 속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국내에서도 '뮬란'은 개봉 이틀 만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줬다. 약 한 달 전 개봉한 '테넷'에게 말이다. 먼저 개봉한 '뮬란'의 나라 중국에서도 혹평을 받으며 영화 팬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도 낮지만, 영화를 둘러싼 외적인 요소와 관련된 논란도 '뮬란'의 흥행 참패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1998년 제작한 동명 인기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뮬란'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뮬란(유역비)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잔인무도한 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병사가 돼 역경과 고난에 맞서 위대한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4'의 보 핍(사진 왼쪽)과 디즈니 라이브 액션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는 그동안 자사에서 제작한 영화를 통해 차별과 편견을 깨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최초 여성 히어로 무비 '캡틴 마블'은 캐릭터 그 자체로서 여성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에 일침을 가한다. 성적 대상화 된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영웅의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말이다.

페미니즘적인 요소는 '캡틴 마블'을 향한 비난으로 돌아왔다. 여성이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받는 것을 넘어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된 데 따른 반작용이었다. 영화 안팎으로 싸우는 '캡틴 마블'의 모습은 변화하는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백인 남성 중심으로 흘러온 영웅 서사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여성 제다이와 여성 저항군 사령관이 탄생했고, 악당이 아닌 흑인 조력자가 등장했다.

이 밖에도 '모아나' '토이 스토리4' '겨울 왕국2' '알라딘' 등을 통해 '백인' '서구' '남성'만이 영화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했다.

디즈니가 답습해 온 '왕자-공주' 서사를 벗어난 여성은 더 이상 치마를 입고 남성에게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디즈니 작품 속 여성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존재가 됐다. 동화 속 존재들조차 침묵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구 문화만이 아니라 최초로 폴리네시아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백인 여성으로만 그려졌던 '인어공주'에 흑인을 캐스팅했고, '토르'에서는 비(非)백인이자 여성인 캐릭터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최초 여성 히어로 무비 '캡틴 마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던 디즈니가 '뮬란'에서는 표면적으로도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았다.

강제 노역, 강제 불임수술, 위구르족 문화유산 파괴 등 다양한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엔딩 크레딧을 통해 촬영에 협조해 준 투루판 공안국 등 신장 위구르 자치구 8개 정부 기관에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디즈니 측은 "영화 제작을 허락한 국가 또는 지방정부에 사의를 밝히는 건 세계적인 관행"이라는 말로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에 대한 부당한 인권 탄압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영화를 촬영한 것은 사실상 탄압에 동조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장 위구르에서 벌어진 인권 문제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은 물론 수많은 인권단체와 20여 개 넘는 국가가 신장 내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위구르족 석방을 요구하고, 중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기업으로서 가장 크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한 눈치 보기가 소수민족 인권 탄압이라는 정치적 올바름이 작용해야 할 중요한 이슈에서 현실과 타협하게끔 만든 셈이다.

잔인무도한 적들로부터 나의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뮬란의 정의로운 행동은 디즈니를 통해 영화 밖에서 무너졌다. 디즈니의 태도에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신작 '인어공주' 에리얼 역에 캐스팅된 할리 베일리. (사진=할리 베일리 인스타그램)
디즈니 작품 속 수많은 캐릭터는 영화 밖에서까지 혐오와 편견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던 누군가는 디즈니의 이 같은 행보에 "Dreams come true(꿈이 이루어졌다)"라고까지 말했다.

혐오와 차별은 그 모습을 더욱 거칠게 드러내고 있다. 영화나 그 속 캐릭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디즈니도 나서야 할 때다.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행보가 더 이상 퇴색되지 않고 더욱 확장되길 바랄 뿐이다. 디즈니가 작품을 통해 스스로 쌓아 온 편견을 뛰어넘는 길을 택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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