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제8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13세 이상 전국민 통신비 지원을 공식화했다. 전날 청와대를 찾은 이낙연 대표가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한 재난지원금 중 13세 이상 전국민에게 1인당 월 2만원의 통신비를 지급하자는 안을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나라 곳간' 관리에 보수적인 기획재정부는 당초 15세~34세와 65세 이상, 혹은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과 노인층 등 일부 연령대에 통신비를 선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액수가 크지 않아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이 대표의 제안을 문 대통령은 선뜻 받아들였다.
◇13세 이상 전국민 지원→5300억 삭감 선별 지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4차 추경의 성격과 지원 효율성을 놓고 마지막까지 대립하던 여야 정치권은 22일 결국 통신비 대거 삭감에 합의했다. 민주당 김태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회동에서 '13세 이상 전국민 통신비 지원'을 '16∼34세 및 65세 이상' 선별 지원으로 전환했다.
당초 약 9200억원이었던 관련 예산은 5200억원 가량 삭감됐고, 줄어든 예산 일부는 국민의힘이 요구했던 독감 백신 무료 접종과 돌봄아동 비용 확대 지원 등으로 전용됐다. 이날 여야 합의로 4차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큰 피해를 본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특수고용근로자 등은 다행히 추석 전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주장한 13세 이상 전국민 통신비 지원 정책 자체가 추경 처리 속도를 오히려 떨어뜨리고, 재난지원금 성격을 정치적 공박 소재로 전락시키는 등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野 강한 반발…與 일부에서도 이견(異見)
야당은 선심쓰는 듯한 통신비 2만원 지원책이 재난지원금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초반부터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국민 통신비 지원이 발표된 당일 비상대책회의에서 "이제 문재인 포퓰리즘을 넘어 이낙연 포퓰리즘이 자라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맥락도 없이 끼어들어 간 통신비 2만원 지원 계획은 황당하기조차 하다"며 "두터워야 할 자영업자 지원은 너무 얇고, 여론 무마용 통신비 지원은 너무 얄팍하다"고 재난지원금 효과에 의문을 표했다. 기본소득당 역시 논평을 통해 "2만원짜리 통신비 지원이 경제 효과가 없다는 비판과 별개로 푼돈으로 여론의 환심을 사려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없으면 날짜에 끌려 추경안에 쉽게 동의할 일은 절대 없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드리는 작은 위로와 정성'이라고 했다고 해서 결코 그대로 갈 순 없다"고 거듭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경제적 승수효과는 분석이 필요하다"(홍남기 부총리), "돈이 직접 통신사로 들어가 버리니 승수효과가 없다. 영세 자영업자나 동네 골목 매출을 늘려주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점이 조금 아쉽다"(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권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를 두텁게 지원해야하는데, 다른 분야 수요증대나 고용창출 효과가 없는 '전시용 정책'이 고민없이 나왔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적기에 지급한다는 본래 취지와 다르게 전국민 통신비 지원이 여야 갈등으로 비화되자 여당 내에서도 일부 자성론이 나왔다.
지난 4월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기부라는 선의를 전제로 전국민에 지원되는 보편 지급 방식을 취하면서, 이번 재난지원금 역시 일부 전국민 지원이라는 항목이 필요했고 통신비에서 이를 찾았다는 얘기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재정 효과와 야당 반대, 국민 수용성 등에 대한 엄밀한 분석없이 정책이 추진됐다.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통상 정책을 급하게 추진할 때는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온다. 그 때 현실성과 효과성을 따져야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걸었고, 취임 이후 공약이 실현되지 못한 만큼, 이에 대한 보전 차원에서 해당 아이디어가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11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가계통신비정책 발표에서 "가계 통신비 인하는 실생활에서 온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적 약속이다. 통신비를 줄여서 우리 집 지갑에 여윳돈을 만들어드리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민세금 가지고 선심" 정치적으로 비화된 재난 지원금
재난지원금 규모와 대상, 지급 시기, 정책 효과 아닌 성격을 놓고 이번에 여야가 쟁투를 벌인 점도 향후 비슷한 정책을 추진할 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나랏돈은 대통령의 '위로와 정성'을 생색내는데 사용하는 통치자금이 아니다"(국민의힘 최형두 원내대변인), "정부여당은 빚을 내서 생산하는 '통신비 2만원'이라는 사탕을 억지로 손에 쥐어주며 생색내려 한다. 국민 10명 중 6명이 반대한다. '이 돈이 니꺼냐'하는 말이 나오는 까닭"(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 등 지원금 성격을 둘러싼 프레임 씌우기가 재차 작동할 수도 있다.
정작 향후 추가 지원금 논의와 같은 긴급한 재정 투입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불요불급'한 정치행위로 매도당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와대는 문 대통령까지 나서 지원 필요성을 언급했던 13세 이상 전국민 통신비 지원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불필요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예산심의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라며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수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