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지난해 4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포함한 '사법 개혁'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등의 내용이 담긴 '선거 개혁' 법안을 여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충돌 사건에 연루됐다. 검찰은 지난 1월 이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다수의 국회의원, 보좌진 등이 (연루된) 국회 내 폭력행위, 이른바 패스트트랙 행위에 관해 최초로 국회 선진화법을 적용해 기소한 사례"라고 밝혔다. 검찰은 국회의원 및 보좌진 등 총 75명의 국회법 위반 혐의에 대한 다수의 고발 사건을 접수받아 사건에 착수했다. 그중 2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황교안 전 대표 등 피고인들은 이날 재판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특히 황 전 대표는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약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고인 측은 "(피의사실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위법성도 조각된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또 "저의 부족함으로 선거에서 패배했고 나라는 더욱 무너지고 약해졌다. 천추의 한이 될 것 같다"며 "국민께 다시 호소드린다. 저는 실패했으나, 야당을 외면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야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같이 무너진다. 결국 모든 국민이 노예의 삶을 감당해야 한다. 벌써 그런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도 '공정'과 '정의'를 꺼내들었다. 황 전 대표는 "선거법, 공수처법 이 두 법은 공정과 정의 본래 가치를 비틀고 왜곡했다"며 "국민에 대한 배임이고 국가에 대한 배신이다. 그래서 우리가 결사 저지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를 향해서는 "판사님도 판사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법관보다 먼저"라며 "일제시대 판사가 지금과 같은 판사가 아닌 이유다. 대한민국 법원이라면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본분을 저버려선 안 된다. 기소된 제 죄목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책임은 당시 당 대표였던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는 "검찰이 그랬듯, 법원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면 저로 충분하다"며 "정당의 대표는 책임지는 자리다. 저의 지휘로 이뤄진 일에 대해 제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했다. 이어 "기소된 이번 사건에 대해선 전혀 부끄럽지 않다. 다만 심히 모자라서 실패한 것이 안쓰럽고 힘을 더 잃어버린 게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은 영상자료 압수 과정에서 피고인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다.
피고인들이 어떤 유형력을 행사한 것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공무집행방해죄의 죄수는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 수에 따라 여럿의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된다"며 "여러 죄가 성립했다고 하는 경우 각 개별죄에 관해 공소사실이 분명히 기재돼야 한다"고 했다.
변호인 측은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사보임'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에서 발생한 사보임이 적법했다고 결정했다. 변호인 측은 "위원을 개선할 때 임시회는 회기 중에 개선될 수 없다. 정기회의는 선임 또는 개선 후 30일 이내에 개선될 수 없다"며 "이게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또 경호권 발동요건의 충족 여부를 두고는 "국회의 경호를 위해 경위를 둔 게 아니라, 외부 세력에 대해 국호를 경호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영상이 한계가 있다고도 말했다.
이를 두고 검찰 측은 "형소법 219조에 따라 피압수자라고 볼 수 없다. 양보해서 그렇게 보더라도 압수 절차에서 (참여권) 보장은 없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또 "영상자료와 관련된 참고인들 진술도 참고해서 했다. 피고인들에게 억울한 점이 있을까 하여 3회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지만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불응했다"고 말했다.
물리력을 행사한 피고인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두고는 "판례를 보면 폭행사건은 넓게 인정한다. 공소장을 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향후에 철저히 입증하고 의견 제출을 통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황 전 대표, 나 전 원내대표 등은 의안과 법안 접수를 방해했으며, 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나 전 원내대표는 범행에 직접 가담했으며, 황 전 대표와 나 전 원내대표는 구호 제창, 격려사 등을 통해 독려했다"며 "스크럼을 짜고 특위 위원들이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스크럼을 짜고 겹겹이 막아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정개특위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저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 같은 행위가 "정개특위 소속 의원들의 정당한 의정활동·직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날 오전에 열린 재판에 출석한 나 전 원내대표는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송구한 일이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 법정에서 재판의 대상이 되는 건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이라며 "정치의 사법화다. 정치는 정치의 몫으로 남겨주십시오"라고 재판부에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시작이 패스트트랙 당시 저희가 했던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헌법정신을 지켜내고 입법부의 자율성, 독립성을 지키는 자유민주주의의 본보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서 2019년 4월 벌어진 일들에 대한 책임은 제게 있다"며 "동료 의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이날 재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세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다. 오전 재판에는 피고인 대부분이 출석했지만, 민경욱 전 의원은 미국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이에 재판부는 구인장 발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 전 의원은 4·15 부정선거 의혹의 홍보활동과 관련해 미국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상 '국회 회의 방해죄'로 기소된 당선인들은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5년 동안 피선거권을 잃는다. 징역형 이상이 확정될 경우에는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
사태에 연루된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5명, 보좌관·당직자 5명 등 총 10명에 대한 첫 공판기일은 오는 23일에 열린다. 이들은 국회법 위반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공동폭행 혐의를 받고 있으며, 21대 당선인 3명은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