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되면 늘어나는 고무줄 재산…허술한 제도 악용했나

총선 후보 때 보다 수억원씩 늘어난 의원 재산 논란 지속
후보자의 경우 직계존비속 재산 신고 규정에 허점…사실상 무용지물
의원 신분때는 철저한 검증때문에 뒤늦게 부모 등의 재산도 등록
선관위, 선출직 출마자들 재산 신고 내역 심사 기능없는 것도 문제

윤창원기자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갑자기 재산이 불어난 의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후보자 시절에는 부모와 자녀 등 직계 가족들의 재산을 누락시켰다가 의원 신분이 되자 뒤늦게 등록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실수를 빙자한 의도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선거때는 재산신고 고지거부가 허용되고 의원 신분이 되면 불허되는 제도 자체의 허점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 당선 후 재산 신고때 부모 등 직계 존비속 재산 추가되면서 급등

3선인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후보 때 보다 12억5000만원 늘어난 22억6000만원을 신고했다. 갑자기 불어난 재산 중 9억6000만원은 부모 재산이다.

같은 당 이수진 의원(비례)과 허영 의원도 각각 후보시절엔 없던 부모 재산을 신고해 6억원과 5억원 이상이 늘었다.

야당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왔다.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과 허은아 의원은 각각 11억원, 5억원 이상이나 증가한 재산을 신고했다.

이들 여야 의원들의 공통점은 모두 부모 재산이 새로 추가됐다는 것.

공직선거법 제49조에 따르면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등록대상재산을 신고해야 한다.

공직자윤리법 제10조의2 제1항은 같은 법 제4조에 의해 본인,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신고하도록 한 조항으로, 지역구 후보자는 지역 선관위에, 비례대표 후보자는 중앙선관위에 이를 제출하면 된다.

후보자든 의원이든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항목별로 가족의 재산을 신고해야 한다.

◇ 출마 후보자 경우 직계존비속 재산 신고 고지 거부 사실상 허용되는 허점

문제는 후보자 신분일때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재산신고 고지 거부와 관련한 규정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의 경우 공직자윤리법상 재산신고 고지거부와 관련한 세부 기준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 함부로 고지 거부를 할 수 없도록 묶어 둔 것.

하지만 출마 후보자들의 재산신고를 규정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 제18조에는 구멍이 있다. 독립생계를 사유로 한 직계존속의 고지거부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소득 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후보자 측이 별다른 소득 자료제출 없이 주소지가 다르다는 등의 일반적인 사유만 내세우면 독립생계를 이유로 고지를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 규정인 셈.

반면 국회의원이 되면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부모님의 소득을 증빙해야만 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

인사혁신처 지침에 따르면 독립생계를 인정받으려면 2인가구 기준 도시지역은 월 179만5000원, 농촌지역은 월 125만7000원 이상의 소득이 증명돼야 한다.

후보자 시절에는 임의적으로 '독립생계'를 주장해 고지를 거부했더라도 의원이 된 후에는 소득이 위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조건 부모 재산도 함께 신고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 이광재·허영 의원과 국민의힘 허은아·조태용 의원 등은 모두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러다보니 일각에서는 이를 알고 있는 정치인들이 후보 시절에는 검소해보이려고 부모 재산을 뺐다가, 의원이 된 이후에 규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다시 재산에 끼워넣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후보자 본인이 스스로 공직자윤리법 기준에 맞춰 재산을 공개하면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상 허점이 명백하기 때문에 후보자에게만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기 때문이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공보물. 이한형기자

◇ 선관위, 후보자들 재산신고 내역 심사 기능 없는 것도 문제

선관위는 선거법의 이같은 부실함을 알 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보자의 재산 내역을 심사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고지거부 사유 등을 세밀하게 조사할 수 없다. 게다가 입법 권한도 없어 제도 개선을 위한 역할도 맡지 못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후보 시절 제출한 재산내역이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를 검증할 방법이 없고, 선관위에서 법안을 발의할 수도 없다"며 "정부나 국회에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해 의원과 후보자의 재산신고 기준의 불균형을 맞추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자의 재산 내역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투표를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재산 신고절차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 민선영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21대 국회의원들의 재산신고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관련 기관들이 함께 의지를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선관위가 후보자 재산 등록 시 어디까지 검증할지 라든지, 이후의 허위 신고나 누락 등에 대한 조치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인사혁신처의 고지거부 행정지침이 적절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다.

앞서 언급한 기준 이상의 소득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소득과 금융자산 등을 통해 독립생계가 가능한 직계가족들도 있는데, 공직 생활 내내 같은 기준으로 재산을 신고해 온 이른바 '늘공'들과 동일한 잣대로 의원이나 선거 후보자들의 재산을 재단하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산 공개로 논란이 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지역의 물가나 생계수준을 감안했을 때 현재 고지거부가 가능하도록 한 소득기준 금액은 지나치게 높은 감이 있다"며 "후보자 때도 의원이 된 후에도 부모님은 계속해서 스스로 잘 살고 계시는데 기준에 따라 재산 신고액이 바뀌다 보니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의원들의 재산 신고 등을 관할하는 국회 감찰관실 관계자는 "의원실의 사정에는 공감하지만 국회는 관련 현안이 발생했을 경우 의견 정도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인사혁신처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권한이 없다"며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법률이나 지침을 바꾸거나, 의원 입법으로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들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국회 내에서도 이와 관련한 선거법 개정이나 관련 규칙 변경에 대한 필요성에 귀를 기울이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인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선거 때는 고지거부가 허용되고 의원 때는 불허되는 각기 다른 기준을 맞추려면 후보자 시절에도 공무원 재산신고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는 등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며 "관련 법안 개정안의 발의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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