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제안' 그대로 받은 문대통령, 보란듯 밀어주기?

문대통령, '환상적' 표현 써가며 당 끌어안기, 이 대표 연설도 칭찬
통신비 2만원 일괄지급 미결정 상태서 이 대표 제안 곧바로 수용
집권 후반기 코로나19로 위기감 높은 상황에서 당청 협력 강조
대선 가도에서도 문 대통령의 지지 이어질까 관심 집중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정책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제안한 통신비 일괄 지급을 선뜻 수용했다. 당정 관계에 대해 '환상적'이라는 단어를 쓰며 이 대표를 띄우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 이 대표에 힘을 실어주면서 당정간 끈끈한 연대를 재확인하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 통신비 일괄지급 결정…이 대표 제안 그 자리에서 수용

문 대통령은 9일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이 대표가 제안한 통신비 일괄 지급안을 그자리에서 받았다.

이 대표는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1인당 월 2만원의 통신비를 지급하자는 안을 가져왔다. 당초 기획재정부에서는 15세~34세와 65세 이상, 혹은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과 노인층 등 일부 연령대에 통신비를 지급하는 안을 검토했지만 이 대표가 13세 이상 모든 국민에 일괄 지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액수가 크지 않아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논리였다.

정부가 이미 보편 지급이 아닌 선별·맞춤형 지급으로 가닥을 잡았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통신비는 구분없이 일률적으로 지원해드리는 것이 좋겠다"며 그 자리에서 이 대표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날 오전까지도 통신비 지급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경제회의를 하루 앞두고 이 대표가 안을 제안하고 문 대통령이 이에 호응하면서 일괄 지급으로 최종 정리가 된 것.

물밑에서 당정청간의 조율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 대표가 안을 제안하고, 이를 대통령이 전격 수용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이 그만큼 당에 힘을 실어주고,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이 대표 띄운 문 대통령…'우분투' 연설 칭찬에 '환상적' 표현까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참석, 문 대통령을 기다리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메시지를 통해서도 당과 이 대표에 힘을 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외부인사의 청와대 초청이 신중한 와중에도 만남이 추진됐다. 문 대통령은 이 대표와 지난대 3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한 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청와대로 초청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개된 모두 발언에서도 이 대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대표가 지난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소개해 화제가 된 '우분투'(ubuntu)도 직접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표께서 국회 대표연설에 '우분투'라는 키워드로 정말 진정성 있게 협치를 호소하고, 제안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야당에서도 호응을 하는 논평이 나왔다"고 소개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 이 대표는 우분투의 뜻과 관련 일화를 소개하면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연대와 협치의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여야간 합의로 가족돌봄휴가 연장법이 의결된 것에 대해서도 "정말 기뻤다"며 "대표님께서 제안하셨던 정책 협치의 아주 좋은 모델이었다"고 높이 평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금 당정간 여러 관계는 거의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아주 좋은 관계"라며 "그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난극복 대책을 함께 마련해 왔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바로 민주당 정부다'라는 당정이 하나가 되는 그런 마음으로 임해 나간다면 국민들에게 더 큰 희망이 되고 국난극복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라며 거듭 협력을 당부했다.

집권 후반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당청간의 화합이 국정 운영에 있어서 필수라는 인식 하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결속을 꾀하고 있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당청 협력 차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적극 힘을 실어주는 모습은 정치적으로도 여러 해석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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