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정은이 부연구위원)은 9일 발간한 ‘김정은 시기 식량증산과 격차의 '엇박자(offbeat)' 보고서에서, 북한의 식량사정을 이해하는 3가지 새로운 현상으로 옥수수 수입 감소, 밀가루·설탕·콩기름 수입 및 마트 증가, 전문 육류 식당과 비닐하우스 증가 등을 꼽았다.
쌀의 대체재인 옥수수의 수입은 지난 2014년부터 급격히 줄고 있는데도, 밀가루·설탕·콩기름 3대 품목의 수입은 최근 2017년 이후 제재 강화 국면에서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식료품 마트와 전문 육류식당도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먼저 밀가루·설탕·콩기름 3대 품목의 조합은 단순히 1차 식량을 넘어 과자, 빵, 인스턴트라면, 국수 등 2차 가공식품 생산을 위한 공업용 원료이자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일종의 중간재로서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일정구역 내 산림을 복원하면 인센티브가 부여되는 이른바 ‘임농복합’정책에 따라 비닐하우스가 증가하면서 사시 사철 야채 공급이 증가하고 있고, 목장의 증가로 육류 소비도 최근 3,4년간 돼지고기 한 종류에서 개, 소, 양, 염소, 오리, 토끼 등으로 확대되고, 요리법도 굽거나 튀기는 등 다양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연구원은 이런 '3가지 신 현상'을 토대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고난의 행군시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먼저 옥수수 수입 감소는 국내 수요 감소에 따른 결과로 해석되며, 이는 옥수수를 대체할 감자 등 다른 곡물의 생산 증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식량 절대 부족 국가에서 옥수수 수입이 감소하는 대신 밀가루·콩기름·설탕 수입이 증대했다는 사실은 쌀과 옥수수 등 주식 이외에 간식을 사먹을 만큼 구매력이 향상된 계층이 전보다 늘었음을 의미한다.
통일연구원은 “고난의 행군 이후 30년 동안 지속적인 시장화와 함께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북한에서 식량 사정이 어느 정도 호전된 측면이 있으나 동시에 간과하기 쉬운 점은 경제개선 조치 과정에서 제도개혁이 광범위하고 심도있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역별, 농장별, 기업소별 성과가 상당히 다르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라며, “심지어 협동농장의 경우, 관리위원장의 역량에 따라 포전 담당제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돈을 받고 토지 사용권을 농민에게 판매해 농장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관리위원장도 등장하면서 농촌 간, 농촌 내 격차는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통일연구원은 “이런 형태는 돈 있는 농민은 실질적으로 더 많은 경작지를 획득해 소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면, 가난한 농민은 경작권조차 상실해 소토지에 매달리거나 생계를 위해 도시 빈민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실제로 이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북한에서도 더 나은 소득을 찾아 도시로 이동하는 이른바 중국의 1980년대 초 ‘농민공(農民工)’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에서는 이들을 ‘농민 일공’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서부 주요 도시 303개의 공장기업소에 대한 분석에서도 일정 정도 하부기관에 자율성이 부여되면서 각 기관의 역량에 따라 운영시스템이 바뀌고, 등급별로 종업원의 식량 배급에도 크게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통일연구원은 “경제 개선 조치에 성공한 농장이나 기업소, 지방에서는 식량이 남아돌고, 실패한 곳에서는 식량이 부족해 오히려 배급시절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일연구원 정은이 부연구위원은 “대북제재, 대홍수나 ‘코로나19’ 등 3중고로 인해 이러한 격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여전히 식량 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게다가 경기침체나 전염병이 발생한 몇 년간 지니계수(불평등 지수)를 추적해 보면,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대홍수와 코로나19 시기 북한당국의 분배 거버넌스 역량 강화는 불가피하다”며, “식량 총량의 부족과 빈부 격차 심화 과정에서 타격을 받고 있는 빈곤계층의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국의 분배 역량 강화와 더불어 외부로부터 인도주의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