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외국에서 텔레그램을 통해 이른바 '던지기 수법'(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기면 구매자가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마약 거래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의 지시를 받은 국내 전달책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다가 수사기관에 덜미를 잡혔다. 박씨의 대담한 행각을 파악한 경찰은 추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인 3명 살해 후 붙잡혔지만…두 차례나 '탈옥'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필리핀에서 수감 중이던 박씨가 탈옥한 뒤 최근 국내에 마약을 공급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하고 추적을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황"이라며 "한국 수사팀과 현지 코리안데스크, 필리핀 경찰 등으로 이뤄진 전담팀이 추적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16년 10월쯤 필리핀 팜팡가주(Pampanga)의 한 마을 인근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남녀 3명을 총으로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 경찰은 필리핀 현지로 파견 나가 수사에 착수했고, 살인 용의자로 박씨를 특정한 뒤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검거에 성공했다.
그러나 필리핀 마닐라의 외국인 전용 수용소 '비쿠탄'에 수감돼 있던 박씨는 2017년 3월쯤 탈주한다. 당시 이를 보도한 외신에 의하면 박씨가 '수용소의 지붕을 뚫고' 도망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내 박씨는 약 두 달만에 현지 경찰 등에 의해 덜미를 잡혔고, 또다시 붙잡혀 수감됐다.
구속된 채 재판을 받던 박씨는 2년 후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한다. 지난해 10월 16일쯤 호송 중이던 박씨는 현지 교도관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식당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탈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 달째 수사기관을 따돌리고 필리핀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박씨가 최근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텔레그램'이었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국내 여러 중간 공급책들을 통해 마약을 판매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전세계'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씨가 텔레그램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국내에 마약을 광고하면 이를 보고 연락이 온 사람들에게 국내 공급책들이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박씨의 행각은 중간책들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꼬리가 잡혔다. 지난 2월쯤 부산, 대구 지역 등에서 마약을 판매하다가 적발된 중간책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과거 필리핀 외국인 수용소에서 박씨를 처음 알게 됐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 10월쯤부터 박씨로부터 마약을 공급받으며, 텔레그램 지시에 따라 마약을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A씨 명의로 개설한 계좌를 통해 수익을 챙겼다. A씨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박씨 지시로 전국 각지에 마약을 유통한 이들이 상당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확인된 바로만 6명 이상이다.
이들이 취급한 마약류는 필로폰, LSD, 코카인, 합성대마, 엑스터시 등 다양했다. 공급책들은 우편물 등을 통해 박씨로부터 마약을 전달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와 연관된 국내의 판매자, 투약자 등 수십명 규모의 명단을 확보해 계속 검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씨가 도피 중에도 대담하게 마약을 판매한 정황이 포착된만큼 추적에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만약 박씨를 붙잡는다면, 필리핀의 허술한 감시 체계 책임을 물어 국내 송환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한편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은 지난 2016년 필리핀 팜팡가주 바크로시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박씨와 공범 김모(38)씨가 필리핀에 온 한국인 남녀 3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사건이다. 당시 이들은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공범 김씨는 범행 이후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국내에서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3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