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전북 남원시 금지면 하도마을, 태풍과 연일 이어진 강수 탓에 한 번 침수된 집은 쉽게 마르지 않았다.
집에 있던 모든 물건을 버린 뒤 더럽혀진 장판과 벽지를 뜯자 잿빛 시멘트가 드러났다.
30년 넘게 이 마을에 산 조봉금(70)씨는 이런 집에서 먹고 잔다.
문을 열고 보일러를 온종일 돌려도 침수된 집은 여전히 습하다.
거실은 낮엔 부엌이고 밤이 되면 침실이 된다.
여기에 남원시에서 나눠 준 접이식 매트리스만 깔면 '잠자리'다.
통풍을 위해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온 모기와 벌레가 가득하다. 거실 벽면에 못을 박아 모기장을 걸어 둔다.
조봉금 씨는 "집을 빨리 말리려면 보일러를 떼야 하는데 저녁이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TV에서 보던 이재민들의 고통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아무것도 없는 집을 둘러보며 "남원시와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옆집에 사는 오정자(64) 씨도 10일째 보일러를 돌리고 있지만 창문엔 물방울이 맺혀 있다.
침수된 집에서 건진 건 벽에 걸린 가족사진뿐이다. 침수로 손상된 문짝까지 떼어 내니 이제 막 집을 짓는 모습처럼 보였다.
오 씨는 집 마당 평상에서 식사하고 잠은 창고에서 잔다.
이 씨는 여든을 넘긴 어머니가 시멘트 바닥 위에서 자다 건강이 악화했다고 했다.
한 달 내내 집을 치웠지만, 아예 허물어진 집 한 동은 손도 대지 못했다.
조리시설도 없어 그동안 즉석밥을 먹었는데 이제서야 가전제품을 하나씩 채우고 있다.
이 씨는 "냉장고, 옷장, 침대 등을 모두 사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데 지원은 없고 다 사비로 채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기록적인 폭우와 제방 붕괴로 금지면 일대 372가구가 물에 잠기며 이재민 200여 명은 금지문화누리센터로 임시 대피했다.
3일 현재 44명이 이곳에 산다.
설상가상 접경지인 전남 곡성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집단 거주도 부담이다.
여기에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 재확산되면서 경찰과 군인 등 복구 작업 인력도 줄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이재민을 위한 배식 봉사마저도 중단되며 식사는 도시락으로 대체됐다.
남원시 장종석 금지면장은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됐지만 아직도 복구할 건 태산"이라며 "코로나19로 집단 거주도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