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김종인호(號) 입장에선 의협 주장에 섣불리 동조했다가 자칫 기득권층 옹호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 와 같은 입장에 설 수도 없어 중재자로서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의협엔 "총파업 안 돼", 정부엔 "결자해지"…어정쩡한 통합당
정부‧여당은 코로나19 재확산세 속에서 의협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 강경 기류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의협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 등 4개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14일 1차 파업, 26~28일엔 2차 파업을 진행했다.
의협은 4개 조건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7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30일 의사들의 집단휴진 결정에 우려를 표하며 정부와의 협상을 촉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의대정원 확대 법안 등 추진을 중단하고 협의기구를 설치해 다시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의사들의 파업을 '군인들의 전장 이탈'에 비유했고, 민주당 의원들도 업무개시 명령을 무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불법 파업으로 규정해 의협을 압박하면서 재논의 가능성 등 회유책을 동시에 쓰고 있는 셈이다.
반면, 통합당은 의협의 1차 파업 이후부터 줄곧 정부와 의협에 대한 양비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의사협회의 무기한 총파업은 절대 안 된다. 코로나19 위기에 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누란지위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업 강행 의지를 밝힌 의협에 자제를 요구하면서, 정부엔 현 사태를 야기시킨 주범이라고 비판한 셈이다.
◇통합당, '약자와의 동행' 내건 마당에…기득권 옹호 이미지 우려
통합당은 정작 의협이 파업에 나선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 찬반 여부에 대해선 명확한 당의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김종인호(號)가 내건 '약자와의 동행' 슬로건과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주장이 다소 결이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열악한 의료 환경 개선이 주된 명분인 '공공의대 신설'에 반대 입장을 취하며 의협 주장에 동조할 경우, 우리 사회 기득권층인 의사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 참패 이후 체질 개선을 통해 중도 민심을 잡겠다고 밝힌 김종인 체제가 개혁의 첫발을 떼기도 전에 또 '웰빙 정당' 이미지에 갇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초선의원도 통화에서 "이 마당에 어떻게 의사 편을 드는 입장을 낼 수 있겠냐"며 "중도층 잡겠다고 이런 저런 개혁을 하고 있는데 지금 스탠스를 잘못 잡으면 중도표심이 절대 안 온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전략적 침묵을 지속하고 있지만, 의협 파업의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어떤 쪽으로든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내 한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사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기득권이라고 불리는 직업군이 의사, 변호사 등인데 대놓고 편을 들 수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스탠스를 계속 갖고 갈 수도 없다. 지도부도 입장을 내야할 시기에 몰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