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프리미엄 영화채널 HBO의 VOD(주문형비디오) 유료 서비스인 HBO 맥스는 최근 '라비 파텔의 행복 추구'라는 시리즈물을 선보였다.
덴마크, 멕시코, 한국, 일본 4개 나라를 여행과 음식 등의 코드로 엮어낸 체험형 다큐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대표적 미디어 기업인 워너미디어 소유인 이 채널의 시리즈 가운데 3번째 에피소드가 바로 한국 편이다.
제목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아보기'다.
30분 분량의 이 프로그램은 한국이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배경을 노동 기반의 경제개발과 경쟁구조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객관적인 지표나 데이터로 우리나라의 발전상과 변화상을 설명한 것까지는 좋았다.
과로사나 독특한 회식문화, 그와 연관된 음식문화 등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경쟁적 삶, 여유 없는 도시, 바쁜 일상, 높은 자살률 등 다소 부정적인 터치 역시 받아들일 만 하다.
하지만 그 같은 이야기 구조를 풀어가다 선정적 충격파가 필요했는지 이 프로그램은 그만 지극히 특이한 사례를 선보이며 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바로 '데스 카페'다.
선진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사회의 병리를, 바로 죽음을 막기 위한 '데스 카페(death cafe)'라는 체험 장소를 가지고 풀어내려 한 것이다.
'데스 카페'란 유언 써보기, 모형 관에 직접 들어가 보기 등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체험 공간이다.
'데스 카페'내 검은 복장의 한국인 도우미에 대해 두 호스트가 "한국에서 가장 우울한 직업인 것 같다"고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HBO는 과로에 지친 한국의 직장인들이 삶과 일에 대해 재평가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기 위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 '데스 카페'가 한국 전역에 생겨나고 있다(popping up)고 소개해 이미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데스 카페'는 서울의 영등포에 '있었던' 곳이다.
모 상조회사가 사회공헌 차원으로 운영하다가 이미 문을 닫고 지금은 지방의 한 대학교에서 위탁 운영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이 프로그램 호스트들이 체험한 장소는 '임종 체험' 공간으로, '데스 카페'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 즉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임종 체험'이라고 하지 않고 '데스 카페'라고 한 것은 '데스 카페'라는 명칭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임종 체험'이건 '데스 카페'건 그 것은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것이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데스 카페'는 영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죽음을 소재로 토론을 거쳐 사람들이 죽음과 삶에 대한 의미를 성찰해 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데스 카페'로부터 명칭 사용권을 얻은 곳에서 '데스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인 하지은 씨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저희 데스 카페는 2016년부터 2개월에 한번씩 죽음과 삶을 소재로 각자의 이야기와 경험,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돼오고 있으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의 데스 카페와 동일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 씨는 특히 "데스 카페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면 영국의 데스 카페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모임이나 단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HBO 맥스는 '라비 파텔의 행복 추구' 시리즈물을 홍보하면서 우리나라 편의 소재를 아예 '데스 카페'로 잡아서 마케팅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또 다른 언론매체인 '인사이더'까지 나서 HBO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한국은 선진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고, 노동 시간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면서 "데스 카페가 한국 곳곳에서 생겨나 사람들의 삶을 재평가하도록 돕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