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국민대 특임교수)
■ 출연자 : 강유정(강남대 교수), 김만권(정치철학자 박사)
◇ 정관용> 매주 금요일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으로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 짚어보는 강유정, 김만권의 시선 코너입니다. 오늘은 광화문 집회 논란 계속 이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왜 광장에 갈까’, 이런 제목을 고쳤는데요. 강남대학교 강유정 교수,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 어서 오십시오.
◆ 강유정> 안녕하세요. 강유정입니다.
◆ 김만권> 안녕하세요. 김만권입니다.
◇ 정관용> 광장을 개념 규정해 보세요, 김 박사님. 넓은 땅?
◆ 김만권> 넓은 땅 맞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게 정치학적으로는 이게 민주정과 공화정이 있던 곳에 필요했던 공간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여러 정치를 들여다보면 고대 그리스 그리고 고대 로마가 소위 아고라와 포럼이라고 하는 광장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모든 정체를 들여다봐도 광장이 정치의 중심이었던 것이 민주정과 공화정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평범한 사람들을 정치에 참여시켜야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이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항상 그 도시를 만들었을 때 그 도시의 가운데에 광장을 놔뒀던. 그래서 정치학적으로는 상당히 공화정과 민주정의 가장 친화적인 공간이 바로 광장이었죠. 그 시작에 있어서는.
◇ 정관용> 독재의 상징으로도 군중동원에 광장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
◆ 김만권> 그것도 사실 정치적으로 실제 독재가 시작되고 난 다음에 독재가 있었던 곳에서도 그렇게 했는데요. 독재에서는 사람들을 동원하는 공간, 그렇게 됐는데요. 이후에 내려오면서 그렇게 변천이 되긴 했는데 실제 정치학에서는.
◇ 정관용> 출발은 민주적 토론의 공간.
◆ 김만권> 그리고 지금 현재 정치학은 광장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 비어 있는 곳. 누가 그곳을 점령함에 따라 달라지는 곳.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곳을 점령하느냐. 아니면 독재나 억압적인 권력이 들어와서 점령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성격이 달라지는 그런 곳이죠.
◇ 정관용> 강유정 교수는 어떻게 보세요.
◆ 강유정> 그래서 저는 이게 영어로 따지자면 플라자로 표현을 하기도 하고 스퀘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했던 서구의 광장들 보면 이를테면 마켓이 서기도 하고 저녁에 사람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는 광장 유형이 있는가 하면 집회에 더 알맞은 광장 유형이 사실 나뉘어요. 그래서 우리의 개념은 광장 하면 저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 어렸을 때 여의도공원이 아니라 여의도광장이었거든요. 가장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1920년대 이제 활주로로 일본군이 사용하기 위해서 시작이 됐고 실제 5. 16광장이라 불릴 때에도 군사용 목적의 활주로로 사용하기 위해서 사실 만들었던 건데 저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거기에서 처음 배웠거든요, 여의도광장에서.
◆ 김만권> 롤러스케이트. (웃음)
◆ 강유정> (웃음)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말씀드리고 싶은 건 뭐냐 하면.
◇ 정관용>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모양도 바뀌었죠.
◆ 강유정> 모양도 바뀌고 이제 비행기도 못 뜨는.
◇ 정관용> 전혀 못 가죠. 완전히 공원으로 조성이 된 거고.
◆ 강유정> 맞아요.
◇ 정관용> 그전에는 그냥 드넓은 광장. 그야말로 거기는 주로 군중 동원형 집회가 열렸던 곳이에요.
◆ 강유정> 그렇죠.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군중 동원형 광장을 떠올리면 천안문 광장이라든가 붉은 광장 같은 게 떠오르고 아까 말씀드렸던 마켓형 광장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스페인 광장이라든가 이런 곳은 사실 굉장히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런 공간이기 때문에 광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도 지금 역사서 광장으로 따지면 당연히 아고라라든가 포럼과 맞닿았겠지만 사람들은 되게 달라서 제가 한국의 개념으로 그럼 광장이 없었을 때는 뭐가 있었을까. 마당의 개념에 더 가까운 거예요. 마당놀이를 하고 장마당이 선다는 표현을 썼었어요. 광장이란 표현은 사실 한국인에게는 어색하고 광장 중심 문화가 서양 문화 중심이라면 사실 한국 문화는 길 중심 문화라서 무슨 무슨 길, 무슨 무슨 마당 옆에 무슨 길 이런 개념이라 어떤 점에서는 저는 수입된 개념이고 굉장히 현대화된 도시인들에게 익숙한 개념의 광장이 아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김만권>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까 생각이 나는 게 뭐냐 하면 그리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럼이 실제로 평상시에는 물물교환 장소로 쓰였어요.
◇ 정관용> 시장.
◆ 김만권> 시장으로 쓰였죠. 그런데 평소에는 시장으로 쓰이다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게 정치적인 공간으로 쓰였거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광장이라는 곳은 과거 고대적으로 사용해서 여기서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조우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결코 서로가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 같은 공간에 머무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었죠.
◆ 강유정> 제일 중요한 게 우리 3. 1운동이 아우내장터로 기억이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대한문 앞에서 3. 1운동 또 격설을 읽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가만 보면 한국의 그런 시위라든가 그런 집회 역사가 바로 서울시청 앞이기도 하고 엄밀히 말하면 대한문 앞인데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덕수궁 주변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울시의회 자리가 국회였고요. 그리고 시립미술관 자리는 지금도 흔적이 남았지만 대법원이었고 정부서울청사가 있다 보니까 사실 여기에 주요 3부가 다 모여 있었으니 여기서 집회를 할 경우에는 굉장히 파급력이 컸고.
◇ 정관용> 그렇죠. 대한민국 정치 1번지니까.
◆ 강유정> 맞아요. 1987의 중심이 왜 서울시청 앞이 되었는가. 그러니까 지금하고는 상당히 다른 지형이라 제 또래 되시는 분들은 거의 다 기억하시겠지만 오히려 젊은 분들은 오히려 2002년 월드컵 기억이 더 강하기 때문에 아니, 거기 그 좁은 데 국회랑 대법원이 다 모여 있었다는 거야라고 의아해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 정관용> 그런데 최근에 오면서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시청까지 이르는 그 광장이 촛불집회. 그래서 최순실 파동, 박근혜 파동으로 이어지는 한 번의 역사적 경험이 있고 또 어쩌면 그 경험의 반대급부로 태극기 부대가 또 조국 사태 이후에는 거기도 역시 수백만이 모였던 대규모의 집회도 하지 않았습니까? 아까 김만권 박사가 그런 표현을 썼습니다마는 누가 거기를 차지하느냐. 그런 싸움의 장이 되어 있는 것도 같아요.
◆ 김만권> 실제로 우리가 지금 현재 광장이라는 공간을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공간. 그리고 거기를 연대의 장소로 생각하면서 자기가 생각했을 때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꾸 그 자리를 차지해서 거기서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리려고 하는 그런 공간에 들어가서 지금 현재로는 아주 어떻게 보면 정파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라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 강유정> 그러니까 도시 거주인이 굉장히 익명적 존재고 스스로 익명성을 띠고 싶어하는 존재인데 광장에 가는 순간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라는 거죠. 이게 굉장히 우리한테 사실은 올해는 좀 아픈 기억이 되었지만 작년 그래도 어느 정도 중반까지는 상당히 좋은 기억이 많았던 거예요. 2002년 말 그대로 정말 사람들이 만나서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기뻐했던 경험도 있고, 촛불을 평화적으로 그때 세계 외신에서 난리 났잖아요.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였는데 아무런 유혈사태도 없고 심지어 쓰레기도 없더라라는 그런 기사가 날 정도로 우리 자부심의 공간이었는데 어떤 점에서 공동체라는 게 꼭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는 걸.
◇ 정관용> 아니죠.
◆ 강유정> 점차 깨닫게 됐던 게 사실 작년에 전혀 다른 성격의 집회가 광화문이라는 한 공간에 열리기도 했었고요.
◇ 정관용> 태극기, 이른바.
◆ 강유정> 올해도 엄밀히 말하면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러다 보니 모이는 게 다 좋은 거다, 집회라는 게 다 어떤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 긍정적인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역시 코로나 이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대한 공포가 생겨서인지 꼭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럼 코로나 시대의 광장이라 지금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 김만권> 실제 우리가 광장이라는 것은 원래 포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열려 있는 공간이고 그 열린 공간을 말로 채운다라는 뜻이었거든요, 원래. 말로 채우는 공간이라는 뜻이었는데 이제 그 말로 채우는 공간 안에 이제 그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지금 현재 질병과 같이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전파되고 옮겨야 될 것은 말들인데 말 대신 병원균이 옮겨가고 그러면서 사회를 위협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코로나 시대, 질병 감염병 시대의 광장은 좀 다른 의미로 읽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온라인 상의 광장 이런 것들로 지금 옮겨가야죠, 사실은.
◆ 강유정> 실제로 많이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많은 분들이 소비자로서 그리고 투표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내지는 여러 가지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드러내고 있는데 결국은 이번에 제일 전광훈 목사 집회라고 했을 때 목사라는 말에서도 드러나지만 어떤 점에서는 종교적인 게 갖고 있는, 종교가 갖고 있는 전근대적인 어떤 맹신의 어떤 결합이 있다라는 거죠. 그게 공간이 집회가 만났을 때 광장이 만났을 때 굉장한 파급력을 가져왔다라는 게 다시금 느껴졌다라고 보고요. 최근에는 그런 어떤 연설이 없었지만 과거에 가령 굉장히 연설을 잘하는 정치인들이 정말 여의도 광장에 사람을 모으는 능력 같은 것들은 대단한 아우라를 가졌단 말이에요. 대단한 대중 설파력을 가졌고.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이제 광장 정치사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게 굳이 오프라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더 많고 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는 점에서 이제 굉장히 광장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 김만권> 사실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오면서 광장이라는 곳은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는 대표자를 뽑잖아요. 그런데 광장이라는 곳은 대표자를 거치지 않고 유권자들이 직접적으로.
◇ 정관용> 직접민주주의.
◆ 김만권>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직접민주주의가 늘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걸 정치학 용어에서는 초일상의 정치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초일상적 행위가 일상의 행위가 되면 엄청 피곤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걸 견딜 수가 없는 거죠. 그것도 대표적인 예가 어떻게 보면 연구혁명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그 연구혁명이라는 게 우리가 어떤 혁명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하는 걸 계속 도와주는 걸 그런 걸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피로감이 엄청나거든요. 사람들은 어쨌든 뭔가가 되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피로감이 엄청난 것 같아요, 지금 현재.
◇ 정관용> 그러니까 국회라고 하는 정치의 공간이 제대로 작동을 하면 검찰도 법원도 안 바빠도 되고요. 광장에 안 모여도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 국회라는 공간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니까 법원이 바쁘고, 광장이 바쁘고 지금 그런 모양새죠.
◆ 강유정> 최인훈 작가가 제일 유명한 소설 광장이고.
◇ 정관용> 쓰여진 게 1960년대죠?
◆ 강유정> 맞아요.
◆ 김만권> 1960년 ‘새벽’에 발표했습니다.
◆ 강유정> 수능에 워낙 많이 나와서 다 읽어보셨겠지만 대표적으로 남한을 밀실에 비유하고 북을 광장에 비유한다는 거죠. 개인의 의사 표현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어떤 점에서 욕망이 너무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까 그게 약간 결합돼 있어요. 남한을 광장이라고 표현할 때도 있고 북을 밀실이라고 표현할 때도 있어서. 그러니까 개인의 자유라는 게 얼마나 지켜지느냐의 얘기로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사실 광장과 밀실을 얘기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어떤 점에서 밀실이 오히려 불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어요. 어떤 의사표현이든 간에 드러날 수밖에 없고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 이제 공공의 이익과 만났을 때 어떤 것을 더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되는가라는 문제도 다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최인훈 작가가 말하는 게 결국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지켜지느냐 그리고 보장이 되느냐로 남과 북의 체제가 나눠졌다면 여전히 이 문제는 남과 북에서도 혹은 한국 내부의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되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김만권> 사실 저는 최인훈의 광장을 읽었을 때 사실 61년판에 서문에서도 왜 이 작품을 썼는지 자기의 서문에 쓰고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말씀하시는 게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제가 이거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고 표현하거든요. 여기서 저는 인간이 공적인 인간으로만은 존재할 수 없고 사적인 인간만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소위 말해서 인간의 하나의 영역에 치부될 때 공적인 인간으로만 살아간다면 그것은 마치 타락한 이데올로기에 한정되고 사적인 인간으로만 살아간다면 탐욕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에 사실 이 두 공간이라는 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광장이 늘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걸로 저는 읽었었습니다.
◇ 정관용> 맞아요. 그거랑 딱 곧바로 대입되는 건 아닙니다마는 아까 강 교수가 얘기한 것처럼 광장이라고 하는 공간은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면서 또 사회문화적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카페들이 쭉 있는 그 모습 그대로 그려준 것처럼. 그건 꼭 카페가 없더라도 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문화적인 의미의 공간으로서 광장의 의미도 굉장히 큰 거잖아요.
◆ 강유정> 그래서 제가 한마디 준비한 걸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광장을 그릇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뭐가 담기느냐에 따라서.
◇ 정관용> 정치를 담느냐 문화를 담느냐.
◆ 강유정> 그렇죠. 굉장히 달라지는데 사실상 한국의 광장 하면 제가 아까 문화도 얘기하고 했지만 잘 안 떠올립니다, 여기서는.
◇ 정관용> 정치만 떠오르죠.
◆ 강유정> 너무나 정치만 떠오르고. 사실 광화문만 가더라도 사람들이 실제 거기서 얘기, 담소를 나누고 음료를 마시기에는 일단 볕도 너무 세고요. 되게 생뚱맞게 섬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라서 여기서 말하는 제가 말하는 문화적인 개념으로 광장으로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그 부분에서 결국은 정치적 공간만은 아니라는 게 좀 설득이 되는 게 저는 이 광장 사용법이 더 넓어지고 한편으로는 정말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정관용> 혹시 가보셨나 모르겠는데 해마다 10월 하순쯤 되면 광화문 시청 앞 그 일대에서 거리축제를 합니다. 저는 거기를 한번 가본 경험이 있는데 정말 평화롭고요. 차는 이제 못 다니게 하고 어디선가는 무슨 판토마임 같은 걸 공연하는 게 쭉 둘러앉아서 그걸 구경하고 하고 좀 더 지나가면 인형극을 하는 데가 있고 어디서는 노래 공연하고 이런 것들이 띄엄띄엄 자연스럽게 퍼져 있거든요. 그런 축제와 문화의 공간으로서 광장. 이쪽이 강화돼야 되는 거 아니에요?
◆ 강유정> 자연스럽게 저녁이면 파라솔이 딱 처져서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아까 박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서양에서는 그게 자유롭게 유기적으로 움직이거든요. 그런데 서양이 꼭 좋다는 이유보다 우리가 광장을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마당놀이할 때 그 마당으로 생각하면 훨씬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 정관용> 서울 시청 앞 그 잔디밭 공간은 겨울이 되면 또 스케이트장이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지금 했으면 좋을 텐데요.
◆ 김만권> 실제로 이제 우리가 정치적 광장에 가 봐도 마찬가지인데요. 정치적 광장에 가면 하나의 목소리만 있는 그런 광장보다는 여러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담겨서 뭔가 같은 뜻을 행사하고 있을 때 같은 뜻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을 때 훨씬 더 다채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광장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내거든요. 저는 사실 2008년에 저희가 광우병 집회 있었잖아요. 그때 제가 두 달을 따라다녔었거든요. 유학하는 중이었는데 제가 유학할 때 두 달 정도를 갑자기 들어와서 그 집회를 따라다녔는데 그 집회를 가면 항상 사람들이 이곳저곳 모여서 조그맣게 모여서 밤새 토론하고 이야기하거나 하는데 서로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를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서 들어주던 모습들이 아직도 떠올라요. 저는 광장이 그런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정관용> 알겠어요. 강유정 교수는 마지막 한마디 ‘광장은 그릇이다’, 이미 했어요. 김만권 박사는.
◆ 김만권> 저는 ‘운명을 만나는 자리’라고 골라봤는데요. 사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최인훈 선생님께서 1960년에 이 소설을 처음 발표하셨을 때 첫 번째 썼던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는데요.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저는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요. 이 말 가지고 왔습니다.
◇ 정관용> 알겠어요. 앞으로는 축제, 문화의 공간으로서의 광장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고 정치적 의미의 광장도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으로 마무리짓죠. 강남대학교 강유정 교수,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 수고하셨어요.
◆ 강유정> 감사합니다.
◆ 김만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