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세관에서는 '무사 통과'…수사는 민간 통역요원에 '의존'

[마약 하기 쉬운 대한민국 - 마약의 덫에 빠진 '외국인 노동자'⑥]
포일·먹지로 마약 감싸 X-ray 투시 피해
향수와 향신료로 위장해 마약탐지견 속여
통관절차 간소화에 마약 전과자도 국내로 쉽게 입국
민간인 통역에 의존하는 경찰 수사… 단일 사건 처리에 급급
수사 미흡 상선 못 잡고 단순 소지나 투약 처벌에 급급
통역요원 전문성 부족… 전문성 갖춘 통역요원 확보 필요

지난 2018년 세관이 김해 공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항공여행자의 캐리어를 검사해 비닐봉투에 넣고 유색 테이프로 감아 은닉한 대마초 18 ㎏을 적발했다.(사진=관세청 제공)
31일은 여섯 번째 순서로 국내로 유통되는 마약 상당량이이 국제우편이나 공항 등을 통해 손쉽게 통과되는 세관 통관 과정의 문제점과 민간인 통역요원에게 마약 수사를 의존하는 수사의 허점에 대해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르포]마약 유통 온상이 된 '수상한 외국인 전용 클럽'
②마약 공급책 태국인 "태국 노동자 절반은 마약 투약"
③국제우편과 항공편으로 버젓이 밀반입되는 마약… 마약 청정국 '위협'
④'유럽부터 아프리카'까지 외국인들 마약 천국 된 대한민국
⑤'n차' 마약 투약 현실화…마약 투약 후 강력범죄도 '빈발'
⑥'마약' 세관에서는 '무사 통과'…수사는 민간 통역요원에 '의존'
(계속)


◇ '포일과 먹지'로 X-Ray 통과·향수로 마약 탐지견 속여…'허술한' 세관 통관 절차

마약이 공항 검색대의 검색이 무색하게 무차별적으로 통과되고 있다. 마약 공급책들은 공항 검색대에서 마약 적발이 쉽지 않고 신체 수색이 허술하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마약을 포일(foil, 얇은 금속판)과 먹지 등으로 포장할 경우 X-ray 투시가 되지 않아 쉽게 검색을 무력화할 수 있다. 또 수색이 어려운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2~3정씩 넣어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모든 수화물은 1차적으로 X-ray 검사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마약류가 감지되거나 의심되는 화물의 경우 직접 뜯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또 마약 탐지견 등을 검색에 활용한다. 그래서 대마초 등은 향이 진한 향신료와 섞거나 향수를 뿌리는 방법으로 마약 탐지견의 감시망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공급책이나 판매책들이 밝힌 마약 반입 방법이다.

모든 물건에 대해 일일이 다 검색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마약 검사는 첩보에 의해 대규모 밀반입 시도 정황이 알려질 때만 수화물에 대해 대대적인 수색을 한다는 게 마약 수사 전문가의 설명이다.

공항보다 세관의 감시망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항만의 경우는 마약 밀반입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항과 항만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마약은 우편과 택배, 고속버스 배송 등 다양한 운송 수단으로 운반돼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세관에서 1차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는 마약만 적발해줘도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관세청은 지난 2월 특송우편 화물의 간소한 통관 절차를 악용한 마약 등 위험 물품 반입을 차단하기 위해 특송화물 및 국제우편물 통관 인력 39명 등 모두 116명을 충원하고 검색 시스템을 강화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야바의 경우 X-ray 판독을 통해 '이상 음영'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실제 비타민C처럼 아주 정교하게 만들고 포장까지 돼 있으면 판독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약별 압수 현황.(사진=대검찰청이 발간한 2019마약류 범죄백서)
◇ 2000년 이후 통관 절차 '간소화'… 마약 전과자도 '제집 드나들 듯'

2000년 이후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통관 절차를 간소화했다. 관광객과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유학생, 원어민 강사 등은 입국 시 간소화된 통관 절차를 통해 국내에 쉽게 들어온다. 통관 절차 간소화는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의 국내 불법체류 증가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근 적발된 외국인 노동자 마약사범 대부분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게 마약수사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비자 면제 협정을 이용해 관광객 등으로 위장 입국한 뒤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들 외국인들은 자국에서 다수의 마약 전과가 있어도 국내 입국 당시 걸러지지 않고 있다. 실제 한국과 태국 간의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돼 90일간 비자 없이 체류가 가능한 태국인들의 경우 마약 전과가 있어도 별 문제없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이런 규정을 악용해 합법적인 체류 기간이 지나면 불법 취업을 하고 마약까지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마약 유통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내국인까지 마약이 번지게 된 단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남서울실용전문학교 경찰행정학과 윤흥희 교수는 "외국인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마약 공급 및 판매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며 "1차적으로 국내에 반입되는 마약을 막기 위해 주요 마약사범 국가 출신 외국인들의 출입국을 강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민간인 통역요원에 의존하는 외국인 마약 수사…'알아도 말 못 하는' 통역요원

경찰은 외국인 범죄 수사를 위해 각 지방청별로 민간인 통역요원을 지정해 활용하고 있다.

민간인 통역요원은 한국어와 해당 언어의 원활한 통역이 가능한 내국인과 결혼이주민, 외국인 가운데 경찰청 본청의 서류 심사와 면접 심사 등을 거쳐 선발된다. 이들은 자유계약 형태로 일하며, 수사 과정에서 통역을 한 뒤 경찰로부터 일비와 시간당 수당을 받고 있다.

광주에서는 116명이, 전남에서는 206명이 경찰의 민간인 통역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 마약사범의 수사를 위한 통역 지원 역시 이들이 담당하고 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 중 마약 사범이 급증하면서 민간인 통역요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통역요원은 범죄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경찰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역요원에 대한 교육이 범죄 분야별 교육이 아닌 단순 외국인 통역요원이 갖춰야 할 소양과 통역 방법, 비밀 보장 등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민간인 통역요원들도 마약범죄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 출신 이주여성인 민간 통역요원은 "경찰 용어 등이 어려워 통역을 하는 데 힘든 점이 있다"며 "단순히 통역의 역할만 주어지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 통역을 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대해 추가로 알게 되더라도 의견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통역요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동남아 출신의 한 이주 여성은 "통역 과정에서 피의자가 단순 투약자가 아닌 마약 공급책 등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지만 통역요원의 역할을 넘어서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못 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마약 수사가 민간 통역요원에 의존하는 구조다보니 마약 거래의 '상선(마약사범에게 마약류를 공급한 자)'은 못 잡고 단순 마약 소지자나 투약자만 잡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외국인 마약사범 중 가장 비중이 높은 태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의 통역만이라도 제대로 갖춰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마약사범 수사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100여 개 국가별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역요원의 역할은 수사관들에게 의사 전달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며 "디지털 포렌식 작업에 들어가기 전 정보를 미리 파악해 통역요원의 도움을 받아 꼼꼼하게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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