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별'이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보아가 오늘(25일)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제2의 보아'를 자처하며 그의 뒤를 따르길 바랐으나, 보아는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독보적인 뮤지션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보아가 쌓아 올린 치열한 20년을 5개의 키워드로 돌아봤다.
◇ 10대 소녀 가수
보아는 백화점에서 열리는 댄스 경연에 나갔다가 기획사 명함을 한 아름 받았고, 그중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1998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보아는 노래·춤은 물론이고 해외 시장 진출을 대비한 외국어 교육 등 소속사의 철저한 기획 아래 실력을 갈고닦은 '준비된 인재'였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하다 보니, 스무 살이 채 되기 전 가수로서 굵직한 커리어를 쌓았다.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정규 2집 '넘버 원'(2002)으로 대상을 탔을 때 고작 17살이었다. 최연소 대상 수상자였다.
건강하면서도 청량한 분위기로 변신한 정규 3집 '아틀란티스 소녀'(2003), 기존과는 사뭇 다른 몽환적이면서도 섹시한 타이틀로 승부를 본 정규 4집 '마이 네임'(2004) 활동까지 보아는 여전히 10대였다.
그래서 보아는 유독 '소녀 가수', '10대'라는 점이 강조되어 호명됐다. 어반 댄스, 골반 춤 등 곡 자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마이 네임' 때를 예외로 둔다면, 그는 일부러 제 나이를 훌쩍 뛰어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보아에게선 도가 지나친 노출이나 성적 대상화 시도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무대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보아만의 강점이기도 했다.
보아는 데뷔를 준비할 때부터 해외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둔 케이스였다. 한국에서 1집 활동을 마치고 이듬해 바로 일본 활동에 전념했다. 초반에는 반응이 기대만큼 오지 않았다. 당시 한국 가요계와는 달리 '올 라이브'를 요구하는 일본은 말도 사람도 낯선 보아에게 더 혹독한 환경이었다. 거기다 보아는 데뷔 쇼케이스 때 심한 음 이탈까지 내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아이디; 피스 비', '어메이징 키스' 등 두 장의 싱글 성적이 예상보다 저조했던 보아는 3번째 싱글 '기모치와 츠타와루' 무대로 주목받았다. 4번째 싱글 '리슨 투 마이 하트'가 발매 당일 오리콘 차트 데일리 3위, 주간 5위에 오르는 동시에 휴대폰 브랜드 CM송으로 쓰이면서 인기를 끌어 일본 활동의 전환점을 맞았다.
첫 번째 정규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는 발매 첫날 오리콘 앨범 차트 선두였고, 이는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이었다. 싱글로도 앨범으로도 승승장구했다. '에브리 하트'는 인기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OST로, '샤인 위 아'는 일본 국민 음료 CM송으로 쓰이며 사랑받았고 '발렌티'는 싱글임에도 20만 장 이상 팔리며 일본 최고 히트곡이 됐다.
'샤인 위 아'로 싱글로서는 처음 오리콘 차트 데일리 1위를 한 보아는 '두 더 모션'으로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외국인 가수가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위를 한 건 21년 만이었다. 정규 앨범도 잘 나갔다. 1집 '리슨 투 마이 하트', 2집 '발렌티', 3집 '러브&어니스티', 4집 '아웃그로우', 5집 '메이드 인 트웬티', 6집 '더 페이스'까지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베스트 앨범 '베스트 오브 소울'까지 합하면 7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썼다.
또한 보아는 '헤이헤이헤이', '도모토 쿄다이', '스마스마' 등 일본 인기 예능에도 자주 출연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보아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함께한 한일 정상회담 만찬에 초청받는 등 한일을 오가는 '문화 사절'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 대체 불가 뮤지션
열다섯 살에 데뷔한 보아는 이제 가수로 활동 중인 시절이 가수가 아니었던 시절보다 길어졌다. '유 스틸 마이 넘버 원'이라는 후렴구를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넘버 원'을 비롯해 '아틀란티스 소녀', '마이 네임', '걸스 온 탑', '허리케인 비너스', '온리 원', '그런 너', '키스 마이 립스', '우먼' 등 다채로운 스타일의 타이틀로 대중을 찾았다.
일본 활동에서도 '어메이징 키스', '기모치와 츠타와루', '발렌티', '키세키', '문&선라이즈', '쥬얼 송', '샤인 위 아', '더블', '록 위드 유', '퀸시', '메리크리', '두 더 모션', '메이크 어 시크릿', '다키시메루', '에버래스팅', '나나이로 아시타', '키 오브 하트', '윈터 러브', '스위트 임팩트', '러브레터', '루즈 유어 마인드', '배드 드라이브' 등 무수한 명곡을 남겼다.
정규 8집에서는 전곡 작사·작곡·프로듀싱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다이나믹듀오 개코가 피처링한 선공개곡 '후 아 유'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키스 마이 립스' 등 총 12곡이 담겼다. 이 앨범은 제25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최고음반상을 탔다. 정규 9집에서도 '홧김에', '리틀 모어', '이프', '노 리미트'를 작곡 및 편곡에 참여하고 '우먼'과 '인카운터' 가사를 썼다.
보아의 앨범과 활동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노래와 안무, 퍼포먼스 어떤 것에서든 캐치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 피스 비'에서 10대 여성 솔로 가수로서는 드문 파워풀한 안무와 독특한 댄스 브레이크를 보여줬다면, 한층 성숙한 분위기에 걸맞은 '마이 네임' 때는 물 흐르듯 이어지는 수많은 포인트 안무로 '따라 추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다. '걸스 온 탑'에서는 직설적이고 당당한 가사와 남성 댄서들과 합을 맞추는 한편 등 뒤에 업히는 안무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온리 원'은 미디엄 템포 R&B 장르임에도 가사를 힙합적인 안무 내용을 표현하는 '리릭컬 힙합'을 시도해 상반된 매력을 더했다. 안무를 더 잘 표현하고자 첫 컴백 무대에서 립싱크를 한 게 큰 논란으로 번졌으나, 이내 고난도 안무와 동시에 훌륭한 라이브를 펼쳐 '역시 보아'라는 찬사를 받았다. '내가 돌아'를 통해 SM 여성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힙합에 도전했고, '우먼'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물구나무서기 안무'를 해냈다.
가창력과 춤 실력, 감정 표현까지 모두 수준급인 보아의 20년을 돌아볼 때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보아는 '발렌티'를 발매한 지난 2003년 일본에서 첫 투어를 시작으로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콘서트를 열었다. 2005년에는 4개 도시에서 8회에 걸쳐, 2007년에는 4개 도시에서 7회에 걸쳐 아레나 투어를 개최했다.
2006년부터는 '보아 더 라이브'라는 이름 아래 콘서트를 진행했다. '더 라이브'는 '좋은 노래와 좋은 연주를 선사한다'는 콘셉트 아래 이어온 프리미엄 라이브 콘서트로, 2018년까지 꾸준히 진행했다. 앨범 발매에 맞춰 투어와 '더 라이브'를 번갈아 가며 진행한 보아는 2011년에는 일본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버전의 '더 라이브'를 준비했다.
일본에서 2003년부터 2019년까지 거의 매해 공연을 해온 것과 달리 한국 공연은 더뎠다. 데뷔 13주년이었던 2013년에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콘서트가 열렸다. 2015년에는 여성 아이돌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단독 콘서트 '나우니스'를 열어 이목을 끌었다. 2018년에는 일본에서 주로 선보인 '더 라이브'를 한국에서도 펼쳤고, 지난해 '#무드' 투어를 진행했다.
20년 동안 가요계의 많은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낸 보아는 스스로 새길을 연 개척자이기도 하다. 요즘은 시작부터 당연한 코스로 여길 만큼 해외 진출이 필수가 되었고, 유튜브 등 전 세계인이 같이 즐기는 플랫폼 덕에 해외 팬들과의 연결이 쉬워졌지만 보아가 일본에 갔던 2001년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일본 음악 시장에서 보아가 이룬 것들은 대부분 '한국 가수 최초'의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보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미국 시장을 두드렸다. 2008년 10월 '잇 유 업'(Eat You Up)이란 곡으로 데뷔했다. 당시 이수만 프로듀서는 "미국의 메인 스트림에서 정식으로 데뷔하는 것이 다른 한국 가수들의 미국 진출과 다른 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듬해 발매한 정규 1집 '보아'는 발매 당일 일본 오리콘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고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27위로 진입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가수로서 길을 걸어온 보아는 'K팝스타' 시즌 1~2, '프로듀스 101' 시즌 2, '더 팬', '보이스 코리아 2020' 등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에 심사위원 및 진행자로 출연했다. 적재적소에 정확한 평가를 하되, 누구보다 지원자들의 심정과 상황을 잘 알았기에 따뜻하게 독려했다. 지원자의 실력을 끌어올리고 시청자의 공감을 사는 한편, 보아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뛰어난 가수인지를 입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