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돌아서면 호남 배신…김종인은 다를까

김종인, 보수정당 수장 최초 5‧18 묘지서 ‘무릎 사죄’ 화제
"저는 당을 책임진 사람"이라고 했지만…비대위 체제 한계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당 관계자들과 함께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5·18 민주묘지 '무릎 사죄'가 보수당에 등 돌린 호남의 손을 잡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남아있다.

돌아서면 반복됐던 배신의 기억을 지워내야 해서다. 보수정당의 ‘호남 끌어안기’는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새누리당, 한나라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주도로 지역화합특위 구성 움직임이 있었고,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행선지가 광주였던 게 대표적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은 호남에서 10% 안팎의 득표를 올렸다. 민주당 타이틀 없는 후보로는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5.18 진상규명은 큰 진전을 보지 못했고, 극우의 막말은 끓이질 않았다.

불과 1년 전 황교안 전 대표 체제에서는 5‧18 막말을 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전 의원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가 논란이 됐다. 제명 의결을 미루다 위성정당에 일부 이적시키는 등 총선용으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통합당은 지난 총선에서 호남에 후보도 내지 못했다. 김무성 전 의원의 호남 출마를 두고 당내 갈등도 빚어졌다.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한 보수당의 호남 구애가 선거용 정략으로 비춰졌던 이유다.

김종인 위원장도 한계가 있다. 총선 패배에 따른 당 수습 차원에서 갑론을박 끝에 출범한 비대위 체제의 수장이고, 임기 역시 한시적이라는 점에서 그의 호남 구애가 '백년가약'이 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지지율 상승 기류를 타고 임기 연장론도 나오지만,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이후 현 지도부 체제도 안갯속이어서다. 김 위원장의 이번 호남행에 당의 전폭적 지지와 피드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번 호남 방문 자체가 그가 진두지휘해야 할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의 포석이라는 정치적 해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5.18 공청회 파문으로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당 윤리위에 제소한 가운데 지난해 2월 13일 오전 자유한국당 윤리위가 열리는 것으로 알려진 여의도 기계회관 앞에서 극우 성향의 지만원이 보수단체회원들과 항의집회를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통합당은 새 정강정책에 5·18 정신을 담고, 비례대표 당선권 안에 25%를 호남 인사로 배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지만 다음 총선때까지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이를 겨냥한 듯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내년 5월 비대위원장에서 쫓겨나고 개인 자격으로 5‧18 기념식에 혼자 몰래가서 다시 한번 무릎을 꿇으면 그땐 칭찬하겠다”고 했다.

같은당 이원욱 의원은 "실천 없는 무릎 꿇기는 쇼에 불과하다"고 했고, 윤관석 의원도 “망언 정치인을 제명하지 않으면 김 위원장 사과는 개인 차원의 사과이고, 쇼에 불과하다”고 견제구를 던졌다.

김 위원장의 5·18 참배 사과는 처음이 아니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 자격으로도 방문했다가 전두환 정권에서 부역한 자신의 과거사에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탈당한 호남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의당과 호남 민심을 두고 경쟁하던 때였다.

몇달 뒤 그는 전두환씨가 발포 명령을 부인한 것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런 답변을 내놨다. “그건 나도 모른다. 그 분(전두환)이 한 걸 내가 그 당시에 전혀 알 수가 없다.”

김 위원장은 이번 5·18 참배에서 자신을 "당을 책임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통합당의 과거를 사죄할 가장 대표적 위치였지만, 그는 동시에 "권력자의 진심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고 했다.

결국 5·18 사건과 관련한 발언으로 광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씨를 그가 움직일 수도, 대신하기도 어려운 처지라는 점이 녹아든 발언으로 보인다.

김종인의 ‘무릎 사과’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수상의 오마주로 보이면서도, 일생을 반(反)나치 운동에 투신하며 유대인을 추모했던 그와 다르게 평가받기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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