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법원행정처장에게 법원이 재판기록을 복사해 교부할 때 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를 고려해 목격자나 제보자, 증인 등 간접적으로 사건에 연루된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보호대상에 포함시키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견인차량 운전기사로 일하던 진정인 A씨는 지난 2017년 12월 한 차량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해당 차량 안에 마약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물품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로부터 약 2년이 흘러 지난해 9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A씨는 발신인이 바로 자신이 신고한 범죄의 피고인 B씨임을 알게 됐다.
B씨는 자신이 입수한 수사보고를 통해 A씨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며 "(당신이) 잘못 신고해 내가 억울하게 재판을 받게 됐다. 내 재판에 나와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에도 B씨로부터 서너 차례 전화를 받은 A씨는 정보유출 경위를 수소문했고, B씨가 재판을 받고 있는 지방법원에서 피고인 측에 기록을 복사해준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A씨는 "내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돼 권리가 침해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법원 측 담당자는 "해당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장으로부터 결재를 받아 열람·복사를 진행했는데, 재판장이 개인정보 보호조치란에 '불요'라고 결재해 사건기록 사본을 교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록은 A씨에 대한 내사 보고서로, B씨의 모친이 재판 준비를 위해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헌법재판소 결정례를 참고해 재판기록의 열람·복사 결정은 소송절차 상 '파생적·부수적 사항'이라는 판단 아래 A씨의 진정을 각하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재판 관련기록의 열람·복사를 승인하는 최종적인 권한은 재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5조는 피고인과 변호인은 소송 중 관계서류를 법원에 열람·복사 신청할 수 있고 재판장은 피해자와 증인 등 사건관계인의 성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와 별개로 법원이 이 법에 따라 제정, 운용하고 있는 '재판기록 열람·복사규칙', '재판기록 열람·복사 예규' 등을 검토한 결과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이 미비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진정인이 연루된 사건이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제2조에서 규정한 마약범죄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규칙 및 예규의 한계로 개인정보 보호조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법원과 달리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266조와 검찰 사건사무규칙 등에 따라 사건 관련서류의 열람·등사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점을 들어 보호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원고, 피고 등 형사재판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증인, 신고자, 제보자 등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은 헌법 및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일관되게 규정하는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보장 원칙뿐 아니라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의 신고자 보호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소송법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긴 하나, 그 결정에 대해 재판장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하위 법규인 '재판기록 열람·복사규칙' 및 '재판기록 열람·복사예규'에 개인정보 보호조치 대상을 확대해 일관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