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기안84 못 놓는 MBC…혐오는 침묵이 키운다

실질적 공영방송 MBC, 기안84 정상 출연 이후에도 '입장 없음'
사회적 약자 혐오 논란 지속된 출연자에게 미디어 권력 부여
여러 차례 하차 요구 묵인…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방송계 남성 중심주의 여전히 유효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지난 14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웹툰 작가 기안84. 시청자들의 하차 요구에도 제작진은 별다른 입장 없이 기안84를 그대로 내보냈다. (사진=방송 캡처)
"이 웹툰이 악의적인 것은 고용 성차별, 임금 성차별 문제는 물론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의 엄혹한 현실을 자신의 몸과 젊음을 앞세워 온 여성이 모두 다 만들어낸 것이라는 책임 전가에 있으며 구조적 불평등의 현실 은폐에 있다." (건국대학교 윤김지영 교수 SNS 중)

기안84 네이버 웹툰 '복학왕' 광어인간 편에 대한 윤김지영 교수의 따끔한 한줄평은 왜 수많은 여성, 어쩌면 일부 남성 구독자와 시청자들조차 그에게 분노했는지 정확히 짚고 있다.

'무능력한 인턴 봉지은이 배 위에 조개를 깨는 장면 후에 스무 살 차이 나는 팀장과 술김에 잠자리를 가져 애인이 되고, 그 결과 정규직을 쟁취한다'는 서사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도 여성을 향한 편견과 왜곡·혐오로 가득하다.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려는 설정을 추가해 사회를 웃기게 풍자하려 했다"는 기안84의 사과문이 바로 그 증거다.

풍자는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웃음'이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을 애교·귀여움이나 떠는 무능력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야말로 부조리하다. '미투' 운동에서 보듯이 권력자가 연애라 주장하는 위계 속 관계들은 대개 직장 내 성폭력에 불과하다.

아무리 합의된 '연인 관계'라는 포장지를 씌워도 성관계를 통해 '정규직' 대가를 얻어내는 설정은 철지난 꽃뱀 프레임에 지나지 않는다.

논란 이후 뿔난 구독자와 시청자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기안84 웹툰의 연재 중지 청원을 올렸고, 기안84가 출연하는 MBC '나 혼자 산다' 게시판에는 하차를 요구하는 항의글이 쏟아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네이버와 MBC는 묵묵부답이다. 네이버는 웹툰 수정·사과 이후 침묵을 고수 중이고, MBC는 13일 이후 5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드릴 얘기가 없다"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방송문화진흥회가 대주주인 MBC는 실질적으로 공영방송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 비난이 거세다. 이미 여러 번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정서로 논란이 된 기안84를 계속 기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 등 대안 플랫폼이 떠오른다 해도,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지상파 공영방송의 파급력은 여전하다. 그렇기에 지상파 드라마·예능 등 방송 출연자들 자질은 항상 엄격한 검증이 요구돼 왔다. 불법 행위가 아니더라도 큰 사회적 파장과 물의를 일으킬 경우 하차한 사례도 많다.


일각에서는 '나 혼자 산다'가 7년 넘게 방송된 장수 프로그램이기에 원년 멤버인 기안84를 빼고 가는 게 부담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존재감 강한 원년 멤버였던 전현무와 한혜진이 결별 이후 하차했어도 인기가 여전했듯이 그로 인해 위기를 맞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려대로 기안84는 지난 14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 편집 없이 정상 출연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은 아직까지도 온갖 항의글과 갑론을박으로 도배 중이지만, 제작진은 연휴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이 없어 '이번에도' 넘어갈 가능성으로 무게 추가 기운다.

집단 성폭행, 불법촬영 등으로 징역형을 받은 가수 정준영. '버닝썬' 사건 직전에 동시 출연 예능프로그램만 3개일 정도로 방송가에서는 그를 많이 기용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버닝썬' 지나도 안 걷힌 남성 중심주의 그림자

사실 그리 놀라운 광경은 아니다. 앞선 기안84 논란 당시에도 MBC 입장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사 콘텐츠가 아닌 웹툰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으니 선을 긋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방송이 사회적 약자 혐오로 꾸준히 논란을 낳은 출연자에게 '스피커'를 쥐여 준 책임에서는 자유롭기 어렵다.

범죄와 사회적 물의라는 점에서 그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끝까지 가수 정준영을 감싸다 직격탄을 맞은 KBS와 현재 MBC의 모습이 절묘하게 겹쳐진다.

2017년 1차 불법촬영 피소 당시 정준영은 조사 중에도 KBS2 간판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이하 '1박 2일')에 꾸준히 출연했다. 제작진의 암묵적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나자마자 제작진은 빠르게 정준영 복귀 분위기를 조성했다. '1박 2일'을 복귀 창구로 삼은 정준영의 자숙은 3개월 만에 끝났다.

그러나 지난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정준영은 승리와 '버닝썬' 사건에 얽혀 불법촬영·집단 성폭행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다. 국민 여론이 악화돼 사건 초반부터 '울며 겨자먹기식' 하차가 이뤄졌다. 지상파 공영방송이 그토록 감싸 왔던 한 연예인의 비참한 결말이었다.

여태까지 '그들'을 밀어주고 끌어준 방송사들 역시 책임론이 대두됐다. 방송계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과 견고한 남성 연대가 이들을 묵인하며 도덕적 해이를 키웠다는 비판이 거셌다.

애석하게도 아직 방송사들은 대중과 전문가들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혐오에 둔감한 남성 중심주의는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언제 어디서 제2의 기안84는 물론, 제2의 정준영과 승리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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