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진하고 여의도 나온 의료계 "무기한 파업도 불사하겠다"(종합)

"4대악 의료정책 철폐하라"…역대 세 번째 의사 파업
의협 "정부의 책임있는 답변 없다면, 2차 총파업 단행"
"의대 신설이 태양광이냐. 국가재정 투입 확대하라" 목소리도
오후 12시 기준,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휴진율 31.3%
정부 "집단 휴진 결정 '유감'…문제해결 위해 함께 노력해달라"

대한의사협회가 의과대학 정원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하며 14일 하루 집단 휴진에 들어간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14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의료 정책에 반대해 집단휴진에 나선 의사들이 국회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정부의 답변에 따라, 오는 26~28일 사흘 동안 '제2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단행하고 무기한 파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동네병원 개원의를 주축으로 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 모여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의대생, 의사 등 주최 측 추산 3천여 명이 참여했다.

이번 파업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14년 원격의료 반대에 이어 역대 3번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페이스쉴드와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은 "현장의견 무시하는 불통정책 철회하라", "'덕분에'로 기만말고 존중부터 실현하라", "안한다고 남탓말고 처우보상 개선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 방안을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철회를 촉구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우리를 진료실에서 거리로, 광장으로 내쫓고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인은 정부"라며 "13만 의사들은 의료계 등에 칼을 꽂는 정부에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의 불길은 삽시간에 번져 결국 거리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추가 총파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예고했다. 최 회장은 결의발언에서 "오늘 총파업은 하루에 그치지만, 오늘 이후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답변을 정부가 내놓지 않는다면 이번달 26~28일 3일 간에 걸쳐 제2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단행한 뒤 무기한 파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결정하고 이제와서? 의사증원 전면 재논의', '무분별한 지역논리 부실의대 재현말라', '의무복무 강제전공 전문가가 노예인가' 등의 피켓을 흔들면서 최 회장 발언에 호응했다.

이날 집회는 서울, 부산, 전남, 대구, 대전, 제주 등에서 동시에 열렸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의 대표들이 참석해 정부 의료정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교과서 사는 데 10원 한 푼 보태준 적 없는 정부가 이제는 의사들 보고 공공재라고 부른다"며 "정부는 모든 의료정책 수립에 전문가들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협 대의원회 이철호 의장은 "의료 최일선에서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인 의사들보다 누가 더 의료문제를 잘 알고 있겠는가"라며 "그런데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의대 정원을 함부로 늘리려 한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의료 백년대계를 정치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의사 숫자를 단순 비교로 호도하지 말고, 숫가나 국가재정 투입을 OECD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인숙 울산의대 의학과 명예교수는 "의대 신설이 태양광이냐. 이렇게 마구 저질러도 되냐"며 "지역 공공병원들에 당장 인력, 장비, 시설을 지원하면 의료지원 격차는 금방 해소된다"고 말했다.

의대협 조승현 회장은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의사 국가시험 거부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당정이 현실을 직시 않고 재논의에 대한 입장표명이 없다면 동맹휴학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김윤 교수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못 미치고, 의사가 자연사망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20년 동안 6만 명 가까운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백진현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은 "외국 연간 의사 수는 1.1% 증가율을 보이는데, 한국은 3.1%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사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법을 무시하고 밀실 정책을 만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부터 진행된 집단 휴진은 동네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기준 전국의 의원급 의료기관 3만 3836곳 가운데 휴진 신고를 한 의료기관은 총 1만 584곳으로 전체의 31.3%에 해당한다.

(사진=윤창원 기자)
휴진에는 대학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도 참여했으나 응급실·중환자실·투석실·분만실 등과 같이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 업무 종사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의료계가 집단 휴진에 들어간 것을 두고 유감의 뜻을 표하며 대화와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재차 요청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그간 의협이 요청한 협의체 구성을 수용하고, 정책 논의를 하자고 거듭 제안을 했지만 집단 휴진을 결정한 것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집단행동을 감행하는 것은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힘들다"면서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67.9%, 한의사를 제외할 경우 56.5% 수준으로 파악됐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를 살펴보면, △서울 3.1명 △광주 2.5명 △대전 2.5명 △대구 2.4명 △부산 2.3명 등이다. 반면, △경북 1.4명 △충남 1.5명 △울산 1.5명 △경남 1.6명 △경기 지역은 1.6명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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