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그후 1년, 죽음으로 '쉴 권리' 얻었지만

계단 밑 휴게실에서 숨진 청소 노동자 사망 1주기
창문 없는 1평 남짓한 방에서 3명 휴식…"환풍기도 미화원이 달았다"
교내 건물 166곳 가운데 76곳 휴게실 없어
휴게실 130곳 중 6곳, 여전히 지하에
미화원들 "많이 개선됐지만…지하 휴게실 없애고, 휴게실 늘리길"
학교 측 "도보 5분 이내 다른 건물 휴게실 이용 가능…휴게실 증축 중"
"청소 등 지원인력 위한 공간 설치 강제해야"

1평 남짓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실(내부) (사진=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제61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제공)
지난해 8월 9일 폭염 속 에어컨 하나 없는 휴게실에서 서울대 청소 노동자 한 명이 숨졌다. 청소 노동자가 몸을 누일 곳은 건물 계단 밑 1평(3.52㎡) 남짓한 방뿐이었다. 창문도, 에어컨도, 환기 시설도 없었다. 휴게실을 같이 쓰던 다른 미화원이 손수 만든 낡은 환풍기가 전부였다. 고인은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으나, 현장을 잘 아는 이들은 "학교가 비인간적인 환경에 노동자를 방치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은 달라졌을까. 서울대 청소 노동자들은 "누가 죽고 나서야 제대로 된 휴게실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①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그후 1년, 죽음으로 '쉴 권리' 얻었지만
②대학 청소노동자들 "더럽지 않은 곳에서, 허리 펴고 쉬고 싶습니다"


◇ "이전보다 좋아졌어요…죽음으로 얻어냈다는 게 슬프죠"

서울대는 환경미화원 A씨가 숨진 이후 계단 밑에 있던 휴게실들을 폐쇄했다. 6일 해당 휴게실 앞에는 '서울대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1주기 추모공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소하지 않은 죽음'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검정색 띠도 곳곳에 있었다.

굳게 잠긴 문 위에는 "노동자가 안전하고 차별받지 않는 서울대를 위해 연대하겠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글귀가 적힌 메모들이 붙어 있었다. A씨를 그리워하는 동료의 편지도 보였다.


그와 함께 방을 쓴 청소 노동자 2명은 A씨가 숨진 뒤에야 '지상'에 휴게실을 얻게 됐다. 이전에 세미나실로 쓰이던 곳으로 에어컨, 환풍기 등이 설치돼 있다. 학교 측은 정수기, 냉장고, 개인 옷장 등을 제공했다고 한다.

A씨와 함께 계단 밑 휴게실을 사용했던 B씨는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B씨는 "작년에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휴게실이 좋아졌다"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A씨 사망 전에도 학교 쪽에 대기실 좀 만들어달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대답만 할 뿐 조치가 없었다"라며 "당시 선풍기도 주워다가 썼고, 공기 질이 나빠 여름에 곰팡이가 폈다"고 말했다. 강의실과 연구실 등에서 버리는 집기들이 휴게실 살림살이가 됐다.

또 다른 청소노동자 C씨는 "학교가 이전에도 노동자들의 '휴게'에 관심이 있었다면 일이 그 지경이 됐겠나"라고 꼬집으며 "호텔처럼 누리겠다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걸 갖췄으면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학교 건물을 지을 때, 선진국과 같이 미화·경비 등 구성원들을 위한 공간을 설계도면에 반영하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8월 9일 숨진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이용했던 서울대 공과대학 제2공학관 직원 휴게실. 창문, 에어컨은 없고 벽에는 환풍구 하나가 달려있다.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 (사진=박하얀 기자)
◇ 서울대 건물 45%25, 휴게실 없다

서울대 환경미화원 휴게실은 지난해 8월 기준 146곳이었으나, 다음 달 고용노동부의 개선조치 권고를 받고 16곳을 줄여 현재는 130개가 있다.

얼핏 많아 보이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건물에는 청소 노동자들이 쉴 공간이 없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대 교내 건물 총 166곳 가운데 휴게실이 있는 건물은 90개에 불과하다. 76곳(45.8%)에는 휴게실이 없었다. 절반에 가까운 건물의 청소노동자들은 쉬려면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한다.

한 건물의 지하 휴게실에는 여성 7명이 함께 쉬고 있었다. 미화원들은 "일하는 건물에 휴게실이 없으면 빈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짬짬이 휴식을 해야 한다"며 "다른 건물로 넘어가 휴게실에서 같이 쉬긴 하지만 편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건물에 휴게실이 없더라도 도보로 5분 거리 이내 휴게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며 "건물 사정에 따라 휴게실 배치를 권고했다. 한 건물에 휴게실 여러 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 환기·냉난방 설비 설치됐지만…여전히 지하에 있는 곳도

서울대는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모든 휴게실에 환기 장치·냉난방 설비가 설치돼 있으며, 노동부가 권고하는 휴게실 면적 6㎡ 이상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20일 기준 당시 서울대 휴게실 146곳 가운데 냉·난방 설비가 없는 곳은 각각 23곳, 10곳으로 집계됐다. 환기 설비가 없는 곳은 26곳이었다.

다만 의과대학(종합실습동 2곳, 간연구소 1곳), 행정대학원 2개 동, 미술관 1곳 등 휴게실 총 6곳은 여전히 지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는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6월 1일 기준 '대학 청소근로자 휴게실 130곳 점검 결과'에서 지하 휴게실 6곳을 그대로 두는 이유를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 수준을 충족했고, 이용자(환경미화원) 의견을 청취한 결과 만족도가 높았다"라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상, 이용자 편의성과 쾌적함 등을 고려했을 때 기관 여건에 따라 휴게실을 지상에 둘 수 없다면 지하에 둬도 된다"며 "휴게실 개수를 계속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환경미화원들은 "학교 측이 에어컨과 환기 장치를 설치해준 것은 크게 개선된 게 맞지만, 아무래도 지하에 있다 보니 습할 수밖에 없다"며 "가능한 지상에 휴게실을 100% 둬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 노동자 사망 이후 서울대는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성 휴게실을 폐쇄하고 지상에 휴게실을 새로 마련했다. (사진=박하얀 기자)
◇ '권고'에 그치는 매뉴얼…"지원인력 위한 공간 설치, 강제해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보면 휴게 공간은 △작업 공간에서 100m 이내, 걸어서 3~5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업장이 넓을 경우 거점별로 휴게 공간을 마련하거나 층마다 설치하도록 했다. △1인당 휴게 면적은 1㎡, 최소 전체 면적은 6㎡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냉·난방 시설 및 환기 시설을 마련해 적정 온도(여름 20~28도, 겨울 18~22도)와 습도(50~55%)를 유지해야 한다. △조명은 심리·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하고 △휴게공간 내 소음 허용 기준은 50dB 이하를 유지할 것을 권장했다. △화재 발생에 대비해 내화성 있고 청소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하며 △소파, 탁자, 냉장고, 냉·난방기 등 생활가전과 식수 등을 비치해야 한다. △휴게시설 표지를 부착하고 주기적으로 청소·소독해야 한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5조(사업주 등의 의무)에 따라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같은 법 제 29조(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 조치)는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휴게시설, 세면·목욕시설 등 위생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위생시설을 수급인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가이드는 '권고' 수준에 그쳐 사업주가 앞서 언급된 요건들을 충족하는 휴게실을 갖추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는 적다. 강은미 의원은 "일정 규모의 건물에 청소 등 지원 인력을 위한 공간을 설치하도록 강제해, 쾌적한 실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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