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도입이 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된 뒤 갖가지 대안이 나왔지만 당 지도부와 남성 의원들의 반대로 사실상 불발됐다.
이밖에도 당내 기구에 여성위원 배치를 명문화하자는 여성 의원들의 요구가 나왔지만, 이마저 묵살될 위기에 처했다.
◇ 거꾸로 가는 민주당…여성 의원들은 좌절, 또 좌절
"전준위(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 회의는 젠더 전쟁이 따로 없다."
전준위에 속한 한 의원의 총평이다.
민주당 내 젠더 전쟁은 '최고위원 여성 30% 할당제'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 도입이 수포로 돌아가자 "30%를 맞추기로 노력한다"는 이른바 '노력 조항'으로 대신하고자 했지만 이마저 남성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노력 조항은 사실상 아무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일부 남성의원들은 "50%로 해도 문제없다"고 했지만, 발목을 잡은 건 상대적으로 젊은 몇몇 남성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출중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공천을 받지 못한 걸 본 적이 없다"고 쏘아붙이거나 "그럼 청년에도 30% 할당해 달라"는 등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도 했다고 한다.
민주당 당헌 8조는 "중앙당 및 시·도당의 주요당직과 각급 위원회의 구성, 공직선거의 지역구선거후보자 추천(지방자치단체의장선거후보자 추천은 제외한다)에 있어서 당헌·당규로 정하는 바에 따라 여성을 100분의 30 이상 포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동안 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는 '각급 위원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해왔다.
몇몇 의원들이 "당대표가 2명 이내에서 최고위원을 지명할 수 있게 한 당헌 26조에 최소 1명 이상을 여성으로 지명해야 한다"며 당헌 개정을 요구했지만, 결국 남성 의원들의 반대를 뚫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관례적으로 당대표가 최고위원을 지명할 때 2명 중 1명은 여성이면서 다른 이익단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지명해 왔다. 예컨대 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은 노동계를 대표하는 여성으로서 최고위원으로 지명받은 바 있다.
"관례를 명문화하자"는 제안에 발끈한 건 이번에도 젊은 남성의원들이었다. 이들은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자 "최고위원회에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구하자"고 했고, 최고위에서 최종적으로 불가 방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준위에서 당헌 개정사항을 의결해 최고위에서 가부(可否)를 결정해온 통상적인 절차와는 달랐다. 할당제에 부정적인 최고위원회의 권위를 빌리려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만한 지점이다.
최고위원 외에도 당내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공직선거후보자재심위원회 등에 위원 50%를 여성으로 배치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불발됐다.
반대 과정에선 "이미 김상희 의원을 부의장으로 추대하지 않았느냐"는 등 원색적인 말들도 나왔다고 한다.
민주당 내 젠더 갈등은 연이어 터진 '미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총선 국면에서 영입 인재였던 원종건씨의 데이트 폭력 의혹, 총선 직후 터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강제추행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의혹이 대표적이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이후 민주당의 주요 지지 세력인 30대와 여성의 지지율이 빠진 데다 부동산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미래통합당에 지지율을 역전당할 위기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민주당에선 윤리감찰단 신설, 성범죄자 영구 제명, 성교육 이수 등 관련 조치들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과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을 피하진 못했다.
이 과정에서 남인순 의원을 필두로 "당 어젠다에서 젠더이슈를 우선순위로 이끌어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등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의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남성의원들이 반발하면서 자리 다툼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중진 여성 의원 사이에선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당헌을 개정할 수 있는데, 셈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당헌 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유감이다. 당내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계층우대정책)에 대한 저항감이 있는데 아쉽다"는 말들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