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충(蟲)이 넘쳐나는 사회 ②치킨게임, 결국 혐오만 남았다 ③먹고사니즘과 능력주의 그리고 희생양 ④혐오를 파는 사람들과 #StopHateforProfit ⑤1인 1표 말고 1달러 1표…차별이 공정하다고? ⑥혐오라는 폭탄 돌리기 ⑦차별금지법과 기본소득 그리고 UD |
# 자본주의 시대는 노력 여하에 따라 빈부격차도 당연하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만큼 '정치적 영향력' 즉 투표권도 다르게 가져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 능력은 곧 돈이니, 1인 1표 말고 1달러 1표가 더 합리적인 것 아닌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지만, 이를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는 공정하지 않은 걸까.
# 토익 점수 800점을 요구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듣기 시험이 불가능한 청각장애인에게 이 조건은 공정한가. 또 언어가 서툰 유학생에게 1.5배의 시험 시간을 제공하는 건 불공정한가. (김지혜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능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은 당연한가. 공정한가.
# 얼마 전 한 방송국 PD가 목숨을 끊었다. 십여 년 동안 동일노동을 해왔지만 계약 조건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아왔다. 문제 제기했지만 좌절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동일한 능력, 동일한 업무라면 임금도 대우도 동일해야 공정한 것 아닌가. 눈 감은 사회는 공정한가.
'선택적' 공정은 공정인가.
인문학적 사고가 절실하다.
# '인문학이 살 길'이라던 대학의 외침이 실종되던 시기와 혐오의 일상화 시기의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공정과 공평, 정의 그리고 혐오와 선동 등의 단어들이 말처럼 어려운 개념만은 아니다. 인문학적 사고 속에서는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하지만 취업을 넘어 재테크 수단으로서 '부동산학과'가 뜨는 현실 속에서 자연스런 접근이 어렵다면 법과 제도, 교육 측면에서 인위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작가 오찬호는 2013년 펴낸 자신의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 "극단적 자기 관리의 고통에 피가 마르면서도 밖으로는 사소한 경쟁 우위를 위해 어떤 차별도 서슴지 않는 걸 '공정'하다고까지 여긴다"는 말로 우리 젊은이들을 평가한 바 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짜뉴스 등 미디어에 대한 개개인의 비판 정신 뿐 아니라 사회적 경계심도 필요하다"며 "사회적으로 혐오의 확산을 막고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대안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많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