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후 월북…"北에선 성폭력이 범죄인 줄도 몰라"

탈북 여성 성폭행 뒤, 처벌 두려워 월북한 탈북 남성
탈북 남성에 의한 탈북 여성 성폭력 "생각 외로 많아"
"北에선 강제추행죄 없어, 강간범죄도 거의 처벌 안돼"
마약범죄, 폭행 등에 대한 죄의식도 남북간 큰 차이
탈북민에 대한 남한 법 교육 단 4시간뿐..."체득 불가능"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정훈 기자 (CBS 심층취재팀)

◇ 김현정> 뉴스 속으로 훅 파고드는 시간, 훅!뉴스. CBS 심층취재팀 김정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 탈북민에 관한 얘기라고요?

◆ 김정훈> 얼마 전 한 탈북 남성의 월북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문 그리고 우려가 커졌죠.

◇ 김현정> 20대 남성이 어떻게 다시 북한으로 갈 수 있었을까, 또 범죄 혐의로 수사 중이었다는데 우리 당국은 어떻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 하는 점들이었죠.

◆ 김정훈> 북한에서는 이 남성이 코로나 의심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사실 여부나 그러한 발표 배경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요. 그런데 궁금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남한 땅에 정착했는데, 왜 다시 사선을 넘어 북을 향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 김현정> 적응을 못했을 수도 있고. 게다가 이 사람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면서요. 처벌도 두려웠던 것 아닐까요?

◆ 김정훈> 저희 취재팀은 그 점에 주목했습니다. 딱 3년 전쯤 이 시간을 통해 탈북 방송인 임지현씨의 자진 월북 정황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는데, 임씨를 비롯해 다시 북한을 찾아간 탈북민들의 주된 월북 이유는 생활고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거든요.

탈북민 김씨가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의 28일 모습.(사진=이한형 기자)
◇ 김현정> 이번엔 좀 달랐죠. 남한에서 저지른 범죄, 그로 인한 처벌이 월북 동기가 됐다?

◆ 김정훈>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범죄의 늪에 빠진 사람이 이번 월북자 한 사람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월북 동기가 된 이번 탈북민의 범죄, 그리고 그 이유를 취재해 이번 훅뉴스 시간에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 김현정> 하나하나 짚어보죠. 월북한 이 탈북민은 성범죄를 저지른 게 확실해요?

◆ 김정훈> 편의상 이번에 탈북한 이 남성을 A씨로 부르겠습니다. A씨는 지난달 12일, 평소 알고 지내던 탈북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신고 돼, 경찰 조사를 받았고요. 이달 21일에는 구속영장까지 신청돼 구인영장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이틀 전인 19일 이미 한강을 건너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고요.

◇ 김현정> 영장까지 나왔다면 범죄 사실은 확실해 보이네요.

◆ 김정훈> 경찰은 A씨의 DNA와 같은 확실한 물증까지 확보하고, 본인도 이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요. 그 설명을 들어보시죠.

[녹취: 경찰 관계자]
"다른 사람 소개로 알게 된 지인이고, 본인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혐의는 충분히 다 인정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증거가 일단 다 확보가 됐고, 행위에 대해서 본인이 기억이 안 난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지 아니었다고 부인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 김정훈> 이처럼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처벌 가능성이 높아지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이네요.

◇ 김현정> 탈북 여성들이 남한에서 수사기관,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들은 간혹 알려졌죠. 그런데 이번에는 한 탈북 여성이 탈북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사실이 발각되자 북한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건데요. 이런 사례가, 비단 A씨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 김정훈> 찾아보니 그러한 사례는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의붓딸을 수년간 성폭행한 탈북 남성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기도 했고, 같은 해 탈북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성상납을 요구한 탈북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2012년엔 중국에서 체포 위험에 처한 탈북 여성을 협박해 성폭행한 탈북 남성이 적발됐고, 그보다 앞선 2010년엔 '북한의 가족을 데려올 수 있다'며 접근해 성폭행한 탈북 남성도 있었고요.

◇ 김현정> 지금 소개해주신 것이 모두 탈북 남성이 탈북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례들인 거죠?

◆ 김정훈> 네. 그리고 저희는 최근에도, 알고 지내던 탈북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탈북 여성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 피해자의 말도 들어보시죠.

[녹취: 성폭력 피해자, 탈북 여성]
"이 사람들 알게 된 계기는 맨 처음에 하나원이라는 센터가 있어요. 또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였어요. 둘 다 학교에서 알게 됐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인데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지내봤고 또 같은 고향에서 왔으니까 동질성도 있고 하니까. 친구 두 명이서 번갈아가면서 저를 성폭행했고. 같은 북한에서 온 사람이, 더욱 이해를 더 잘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니까 더 용서가 안 되고…"

◇ 김현정> 남한으로 내려와 하나원에서 만난 뒤, 같은 학교를 다닌 남성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는 거네요.

◆ 김정훈>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서 통계 자료도 찾아봤는데요. 지난해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성폭행 범죄로 수감돼 있는 탈북민 수는 2017년 14명, 2018년 15명, 지난해 7월 기준으로는 16명입니다. 그런데 숨겨진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탈북 성폭행 피해자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전체 탈북민 규모가 3만 명이 넘죠. 이 중 16명 정도가 성폭행 범죄로 처벌돼 수감돼 있는데, 실제로는 숨겨진 피해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탈북민들 증언이라고요?

◆ 김정훈> 앞서 들으신 피해 여성의 사례, 그리고 월북한 A씨의 범죄처럼 탈북 남성이 탈북 여성을 상대로 자행하는 성폭력이 심각하다는 게 내부의 이야기입니다. 탈북민이면서, 탈북민을 돕는 남북하나재단 이사를 지낸 현인애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남과 북의 문화가 워낙 달라 성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탈북민들도 많다고 하는데요. 들어보시죠.

[녹취: 현인애 이화여대 초빙교수]
"성폭행,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웬만하면 다 견뎌야 하는 걸로, 괜찮은 걸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특히 남자들이 그렇고 여자들도 그래요.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이 생각 외로 많아요. 그걸 가지고 이렇게 문제를 세워서 해야 된다고 생각 못하죠. 시선을 받으면서 말할 그런 용기도 없고요. 또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잘 모르고요. 조사하기도 힘들어요. 그걸 말 안 하죠 사람들이."

◇ 김현정> 성희롱은 범죄인 것도 잘 모르고, 성폭행 같은 심각한 상황을 당해도 문제제기할 상황도 아니다?

◆ 김정훈> 사실 북한 내부의 성인지감수성은 대단히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남한 사회와 비교해 성폭력 범죄에 크게 둔감하다는 것이죠.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해도 대번에 '네 행실이 문제 아니냐' 이런 핀잔이 돌아올 정도라고 하는데요.

◇ 김현정> 우리사회도 과거에 그랬던.. '미니스커트 입고 다닌 당신이 문제 아니냐' 이런 식?

◆ 김정훈> 그런 인식은 남한에 내려온 후에도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고 하고요. 그래서 가해자들 역시 죄의식이 떨어진다고 해요. 성폭력에 관한 북한의 실상이 어떻냐면, 강제추행과 같은 죄는 아예 북한 형법으로 규정돼 있지도 않습니다.

◇ 김현정> 아예 없다고요, 북한법에서는?

◆ 김정훈> 강제로 추행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죠. 또 강간죄 같은 게 있어도 실제 처벌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데요. 이 점은,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자문위원인 전수미 변호사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전수미 변호사]
"북한 형법에 우선 강제추행죄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만지면, 성적으로 만지면 그게 범죄가 된다는 것도 인식조차 못하는 게 상당수 많으시고요. '내가 왜?' 여자를 만진 걸로 인해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되는지 항의하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그리고 특히 강간죄 같은 경우는 거의 권력형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처벌되는 사례는 1년에 한 5건 미만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 거의 처벌이 안 된다고 보시면 되죠."


◇ 김현정> 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정도로 크네요.

◆ 김정훈> 실제로 지난 2017년 북한은 여성차별철폐협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UN위원회에 자체 조사 결과를 보고했는데, 2015년 강간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5명뿐이라 했습니다.

◇ 김현정> 북한 전체에서 성범죄로 처벌 받은 사람이 다섯 명? 믿기 어렵네요. 제대로 처벌되지도, 실태가 파악되지도 않는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그런 제도와 문화 아래 살다가 남한으로 내려오면 '이게 죄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고요.

◆ 김정훈> 앞서 저희가 만났던 성폭행을 당한 탈북 여성은, 남한에 내려와 처음엔 ‘성폭력’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성과 관련한 교육 자체를 받은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특히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갖는 탈북민들 안에서는 남한에 정착한 후에도 여전히 성폭력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성폭력 피해자, 탈북 여성]
"노래방에 가서 같이 친구들 모아서 술 마시고 놀잖아요. 이러면 취해있는 상황에 있는 친구들 있잖아요. 만지고 그래요. 저 봤어요. 한국 분들 같은 경우, 자리에 껴있으면 그런 행동 안 할 거예요. 같은 사회에서 이질성 동질성 이런 것 때문에 하는 행동인 것 같아요."

◆ 김정훈> 남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그런 행동을 못하는데, 탈북민들끼리 있으면 쉽게 성폭력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 김현정>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것이 심각한 범죄다’라는 생각을 잘 못 한다는 것이죠. 이번 이야기의 시작이 됐던 게 A씨 얘기잖아요. 수면 아래 가려진 A씨 같은 이들이 탈북민 사회에 상당히 많을 수 있다는 얘기네요. 죄의식도 크지 않고.

◆ 김정훈> 성범죄 외에도, 북한에서는 대마초가 합법인데 남한에 와서 그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하다가 마약류 범죄에 연루되기도 하고요. 또 북한에서 개인 간 폭행은 법적 처벌을 잘 받지 않는다고 해요. 이러니 남한에서 주먹을 휘두르다 전과가 생기는 경우까지 종종 있는 겁니다.

◇ 김현정>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은데요.

북한이탈주민들을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하나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 김정훈> 하나원에서의 교육을 받기는 하는데요. 교육이 총 12주 동안 이뤄집니다. 그때 정서 안정에서부터 진로지도, 정착 지원, 시장 경제 등등, 그야말로 한국에서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을 그 시간에 익혀야 합니다.

◇ 김현정> 좀 짧아요. 12주.

◆ 김정훈> 그 중에서도 이 중에 남한 법 이해를 돕는 시간은 단 4시간입니다. 그때 교육을 한다고 해서 이를 체득할 수나 있을까요? 남북하나재단 이사였던 현인애 교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하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현인애 이화여대 초빙교수]
"하나원에서 좀 하긴 하는데 하나원에서 배울 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들어요. 바로 듣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잘 모르죠. 한두 번 강의해가지고는 사람들이 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르쳐줘도 머리에 들어도 안 가요."

◇ 김현정> 모든 걸 1~2년 가르쳐줄 수는 없죠. 그러다보니까 법에 대한 얘기는 짧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이런 내용을 강조해서 가르치는 거죠.

◆ 김정훈> 그 때문에 남과 북의 기준이 현격히 다른 문제를 두고는, 죄의식이 떨어지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러면서 범죄에 노출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 빠진다는 겁니다.

◇ 김현정> 저희가 탈북민들한테 어떤 꼬리표를 붙이려거나, 낙인을 찍으려는 게 아닙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분들이 부적응할 수 있고 이 사회에서 원치 않게 낙오자가 될 수도 있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이번처럼 다시 월북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이걸 막자는 거잖아요.

◆ 김정훈> 바로 그 점입니다. 한국 사회가 북한과 어떻게 다른지, 무엇은 가능하고 어떤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 김현정> 특히 성에 관련해서요.

◆ 김정훈> 우리도 잇따른 미투 사건으로 사회가 큰 홍역을 겪으며 성인지감수성이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까? 덜컥 다른 사회에 살게 된 탈북민 역시 가해든 피해든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못지않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성범죄를 저지르고 월북한 A씨 사건을 계기로 탈북민들의 성에 대한 다른 인식까지 짚어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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