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43·사법연수원 38기)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29일 오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개혁위의 이번 권고안에 대해 여러 번 고민해 보았으나 검사이기 이전에 법률가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법무부에서 권고안을 불수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검사는 "정말로 법률가의 양심과 이성을 걸고 이번 권고안이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며 "검찰 수사에 대한 최종 책임과 함께 그 결정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는 검찰총장보다, 다음 인사가 남아있는 일선 고검장이 정치적 독립에 취약하지 않다고 생각하냐"고 지적했다.
박철완(48·연수원 27기) 부산고검 검사도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보다 근본적 해결책으로 검찰총장이나 대검을 아예 없애라"고 꼬집었다. 개혁위가 보도자료에서 '제왕적 검찰총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인사권, 예산권이 없는 검찰총장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글에는 다른 일선 검사들도 "동의한다. 권고안을 불수용해야 한다"고 댓글을 달며 목소리를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이를 각 고등검사장에게 넘겨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한 검찰청법 제8조를 고쳐 장관이 고등검사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제시했다.
사실상 현재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한 수사지휘 체계를 법무부 장관이 정점이 되도록 바꾸는 방안이다. 그러나 그간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정책을 지지해왔던 진보진영 시민단체마저 이번 개혁위의 권고안에 대해서는 검찰개혁의 본질을 해치는 '개악'이라는 취지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논평을 통해 "검찰권행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을 망각한 권고안"이라며 "정치권력이 검찰권을 휘두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개혁의 본질은 검찰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고 검찰권 오남용의 방지는 그 다음의 과제"라며 "검찰총장 권한 분산에만 눈이 멀어 검찰개혁의 본질을 망각한 개혁위가 검찰개혁에 역행하고 있다"며 권고안 폐기를 촉구했다.
개혁위 권고 이후 법무부는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형사사법의 주체가 검찰총장이 아닌 검사가 되도록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는 쪽으로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권고안을 이제 막 받아본 입장"이라며 "전체 방향성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일 뿐이며 여러 우려의 목소리도 종합해서 볼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면서 정영훈 개혁위 대변인은 전날(29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건 맞지만 장관의 수사지휘권도 현행보다 엄격하게 통제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며 "장관의 권한만 높였다는 것은 완전히 악의적인 해석"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는 일상적으로 이뤄져온 반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는 이번 채널A 검언유착 의혹을 포함해 역대 2번 밖에 없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권한이 고등검사장 6명에게 분산되면서 정치적 외풍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임기를 보장하는 '평생검사제도'를 해답으로 내놓으면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혁위는 민간 외부위원으로 꾸려져 있고 법무부가 행정적인 지원을 하는 것 외에는 철저히 독립돼 있다"며 "개혁위 논의를 사전에 협의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여권에서는 개혁위 권고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검찰총장을 차관급으로 격하시키는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혁위 권고안대로 검찰총장이 검사 인사에 의견을 제시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하고 총장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낮추는 개정안을 냈다.
법무부는 신중론을 펼치고 있지만 곧 검찰 간부 인사에서 개혁위와 여당 개정안의 취지대로 '대검 무력화'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차장검사급이 맡아온 대검 선임연구관이나 기획관, 정책관, 대변인 등의 보직을 일부 축소하거나 부장검사급으로 낮추는 식으로 '힘을 빼는' 방안이 거론된다.
검찰 고위 간부인사는 당초 30일 오전 10시 열릴 예정이었지만 잠정 연기된 상태다. 현행 검찰청법상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아직 윤 총장과 별도의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