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가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을 권고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데다, 수사 과정에서 갖은 불협화음이 빚어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마저 수사팀이 "평정심을 잃은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검찰청은 한 검사장이 수사팀 부장검사를 고소하고 감찰을 요청함에 따라 이번 논란을 직접 따져보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정진웅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사무실에서 한 검사장 휴대전화 유심 카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심의위가 '한 검사장 수사중단·불기소'를 권고한 지 닷새 만이다.
심의위는 앞서 검찰 측 설명까지 청취한 뒤 한 검사장이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범죄를 공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이 같이 권고했지만, 수사팀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압수수색 과정에선 한 검사장과 수사팀 정 부장검사 간 초유의 '검검(檢檢) 육탄전'까지 벌어졌다.
한 검사장은 수사팀의 정 부장검사가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한 검사장 측 변호인인 김종필 변호사는 "한 검사장이 일방적인 신체적 폭행을 당했다. 공권력을 이용한 독직폭행"이라고 밝혔다. 입장문에 따르면 압수수색 당시 변호인 참여를 요청한 한 검사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김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도 되는지 물었고, 정 부장검사가 허락했다고 한다. 이에 한 검사장이 통화를 위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려고 하자 정 부장검사가 폭행을 했다는 게 입장문의 주요 내용이다.
한 검사장 측은 "갑자기 소파 건너편에 있던 정 부장검사가 탁자 너머로 몸을 날리며 한 검사장의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몸 위로 올라타 한 검사장을 밀어 소파 아래로 넘어지게 했다"며 "이 상황 목격자가 다수 있고, 이후 항의 과정에서 이 상황을 인정하는 정 부장검사의 태도가 녹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검사장은 압수수색 영장에 협조하려는 입장이었으나 수사 검사로부터 이런 독직폭행을 당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하고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검사는 이례적으로 본인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한 검사장의 압수 거부 행위를 제지하면서 압수 대상물을 실효적으로 확보하는 과정이었을 뿐, 제가 탁자 너머로 몸을 날리거나 일부러 한 검사장의 팔과 어깨를 움켜쥐거나 밀어 넘어뜨린 사실은 없다"고 했다.
정 부장검사는 휴대전화 사용을 허락받은 한 검사장이 당시 "무언가를 입력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이를 확인하니 "한 검사장이 앉아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고, 마지막 한 자리를 남겨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지막 자리를 입력하면 압수물 삭제 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긴급히 '이러시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직접 압수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한 검사장이 압수를 거부했고, 이에 맞서 휴대전화를 뺏으려다가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는 게 정 부장검사의 설명이다.
정 부장검사는 "한동훈 검사장의 변호인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 긴장이 풀리면서 팔과 다리의 통증과 전신근육통 증상을 느껴 인근 정형외과를 찾아갔고, 진찰한 의사가 혈압이 급상승하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전원 조치를 하여 현재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인 상태"라며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 검사장 측은 정 부장검사의 입장문이 나오자 재반박에 나섰다. 수사 검사들 다수가 보는 상황에서 ‘구속 사유’로 작용할 수 있는 증거인멸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전화를 걸기 위해 비밀번호를 풀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검사장 측은 정 부장검사가 한 검사장을 폭행하고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뒤 ‘잠금해제를, 페이스 아이디로 열어야지, 왜 비밀번호를 입력하느냐. 페이스 아이디 쓰는 것 다 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압수수색에 참여했던 실무자들도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가 비밀번호를 풀어야 전화가 가능한 상태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장과 반박이 오고간 가운데 한 검사장은 정 부장검사를 피의자를 폭행한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등검찰청에 고소하고 감찰도 요청했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일단 감찰 사건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지 않기로 결정된 상황이어서 서울고검이 직접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수사팀의 압수수색을 둘러싼 '불법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수사팀이 이동재 전 기자의 휴대전화 2대와 노트북 1대를 채널A 관계자로부터 넘겨받아 압수한 건 위법이기에 취소돼야 한다는 결정을 지난 24일 내렸다. 그러나 수사팀은 "관련 규정과 기존 절차에 비춰 압수수색은 적법하다고 판단된다"며 법원 결정에 재항고 의사를 표했다.
심의위와 법원 판단에 모두 불복한 수사팀 행보에 이번 '육탄 압색' 논란까지 더해지자 검찰 내부에선 비판적 의견도 적지 않게 제기된다. 수사팀이 '검찰 때리기'라는 여권 강경파 기조에 맞춰 '정답'을 정해놓고 무리하게 수사를 이끌어 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 간부급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이 많이 격앙된 것 같다"며 "수사 경험상 유심카드라는 것이 몸을 던질 만큼 핵심증거인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 부장검사는 입장문에서 이번에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심의위 소집 이전에 발부받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의위의 '수사 중단' 의견을 무시한 게 아니라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수사팀이 한 검사장을 이날 소환조사할 예정이었다는 점을 이미 직접 밝힌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