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과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28일 오전 10시 50분쯤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피해자의 인권회복의 첫걸음이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중요한 순간"이라며 "인권위가 직권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피해자 측은 지난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인권위에 이 사건을 조사해 달라며 '진정'을 제기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제도 개선 등 보다 폭넓은 조사를 위해서는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더 적절하다는 판단에 '진정제기'에서 '직권조사 요청'으로 방향을 바꿨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정이 아니라 직권조사 요청 형식을 취한 건 직권조사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제도개선을 권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직권조사 요청' 안에는 피해자가 진정을 통해 판단 받으려고 했던 사실관계가 모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직권조사 요청안에 적시한 '요구사항'에는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및 강제추행 등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 등 성추행 의혹 자체에 대한 조사 요구 뿐만 아니라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직장 내 성희롱·성범죄 피해에 관한 방조'와 '고소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누설된 경위' 등 현재 수사 중인 사건도 포함돼 있다.
더불어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성차별적 직원 채용 및 성차별적 업무강요 △직장내 성폭력, 성희롱 피해에 대한 미흡한 피해구제절차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 이행 여부 △선출직공무원 성폭력에 대한 징계조치 등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요청 △직장내 성폭력예방교육의무의 이행 여부 등 제도 개선을 위한 폭 넓은 조사를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는 "우리는 지난 20여일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력의 실상을 참담하게 확인했다"면서 "여성에게 행해지는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평등도, 민주주의도 없다"고 요구사항의 취지를 설명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취재진에게 "(최 위원장이) 이번 사안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화까지 총체적으로 중하게 보고 잘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피해자의 직접 진정 제기에 따른 조사와 직권조사는 조사 절차상에선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인권위법에는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할 때' 직권조사를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직권조사에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 관계자는 "직권조사 발동 요청은 민원 형식으로 접수될 예정"이라면서 "직권조사 여부는 위원회가 검토한 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피해자와 연대하는 여성단체 및 시민들은 오전 10시쯤부터 서울 시청 앞에 모여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보랏빛 행진'을 진행했다.
주최 측 추산 약 150명이 참석했는데, '여성주의'를 의미하는 보라색의 옷을 입고 보라색 우산을 펼친 채 시청 앞에서 인권위 앞까지 1km가량 도보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은 시민들이 피해자에게 전달한 연대 메시지를 피켓으로 들고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노동자에게 평등을", "우리의 연대는 그들의 위력보다 강하다", "성차별 성폭력 없는 일터 보장하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