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2년 4개월 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박 전 시장과 안 전 지사 사건은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절대적인 상하 관계에서의 성폭력이라는 점, 두 명 다 여권의 유력 대통령 후보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폭로 이후 피해자에게 극심한 2차 가해가 쏟아진 것도 같다.
다른 점이 있다. 김씨는 고발 전후 비서실과 캠프 동료들의 도움과 연대를 받았다. 박 전 시장 피해자 A씨는 사무실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그는 '서울시 6층'에서 홀로 4년을 버텼다고 했다. 고발 뒤에도 '내부 조력자'는 보이지 않는다. 되레 그들은 자신들의 성추행 방조 혐의를 벗으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증거까지 경찰에 제출했다.
◇서울시 '6층 사람들', 방조 의혹 벗으려 피해자에 불리한 증거 냈다
박 전 시장 측근들은 피해자 A씨가 지난해 7월 전보될 당시 작성한 인수인계서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서류에는 "최초 3선 서울시장 비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박 전 시장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해당 서류를 근거로 자신들의 방조 혐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에서 A씨는 비서실에서 근무한 4년 동안 20명의 동료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고 말했다. 수차례의 근무 부서 이전 요청도 외면 당했다고 했다.
◇전문가들 "비서실, 시장과 '운명공동체'…나서기 힘든 구조"
김씨를 사건 초기부터 도왔던 정의당 배복주 여성본부장은 "비서실과 시장은 '운명 공동체'다. 시장의 성공이 자신들의 성공과 아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는 구조"라며 "그것을 훼손하는 피해자를 그들이 어떻게 지지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김지은씨는 외부 정무직에서 발탁된 케이스고, 박 전 시장 피해자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에서 비서실로 픽업된 경우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며 "김씨를 도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국회나 캠프 등 비서실 조직 외부의 인맥들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씨도 A씨처럼 충남도 내부 직원에게 피해를 호소했지만 도움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안희정 사건보다 피해 약하다고? 4년이나 지속됐다"
김씨 변호인단이었던 서혜진 변호사는 "내부에서는 가해자가 정말 부적절한 행위나 범죄 행위를 하더라도 '권력자니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한다"며 "피해자가 문제제기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의 사망이 준 영향은 없을까. 서 변호사는 "가해자 사망 여부와 조력자 유무는 전혀 무관하다"며 "지금 단계에서 조력자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당장은 배신자 낙인이 두려워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씨의 조력자들은 피해자를 도와 증언했다는 이유로 안 전 지사 측의 '역고소'에 휘말리거나 지지자들의 공격에 시달렸다.
책 '김지은입니다'에 나오는 조력자 신용우씨는 처음 피해 사실을 듣고 "그저 (네가) 피해다녀라"라는 조언으로 김씨를 외면했다. 하지만 김씨의 미투 이후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고, 언론과 직접 인터뷰를 하며 김씨를 도왔다.
이후 신씨는 아이까지 신변 위협을 당해 경찰서에 신고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재판에 나와 했던 마지막 증언이 책에 기록돼 있다.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혔지만, 피해자와 함께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