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68), 김건희(75), 김정헌(74), 노원희(72), 민정기(71), 박불똥(64), 박재동(68), 성완경(76), 손장섭(79), 신경호(71), 심정수(78), 안규철(65), 이태호(69), 임옥상(70), 정동석(72), 주재환(79) 등 1980년대 민중미술단체 ‘현실과 발언’(현발) 동인들이다.
‘현실과 발언’의 40주년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그림과 말 2020’전이 31일까지 열린다.
전시에서는 1980년대 당시 냉혹했던 현실을 보여준다. 신경호 작가의 연탄재 위에 놓여진 검정고무신을 넣은 ‘영정사진(넋이라도 있고 없고-행방불명)’은 5ㆍ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에서 실종된 무연고자들을 생각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의 고무신은 당시 광주의 길 위에 굴러다니던 신발 짝 중 그나마 형체가 남은 것을 주워 붙인 것이다. 얼굴 없는 이들을 위한 영정을 지어주고자 했다. ‘꽃불 – 역천(逆天)’(1992)은 전남대학교 학생처장 당시 차장실 방에 날아들어온 화염병을 이용해 만들었다. ‘꽃불’은 당시 화염병을 가리키던 은어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대통령을 거스른 시위대의 뜻을 기리는 작품”이다. 작가는 “한국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선명하게 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 중 한 가지가 ‘잡초의 힘’”이라고 말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 위에 쭈쭈바 광고 이미지를 덧붙인 김건희의 ‘얼얼덜덜’(1980). 작가는 “그때 이 작품이 팸플릿에 실리면 안 된다고 해서 밤새도록 신문 기사 내용을 지우기 위해 작품 위에 수없이 덧칠을 해야 했다”고 술회했다.
1980년대 한 청년이 암울한 세상을 뚫고 억압의 사슬과 장벽을 끊어내려 문을 열고 나오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 작품 심정수의 ‘사슬을 끊고’(1990)도 당시 시대상을 잘 나타내준다. 그는 천둥 치는 하늘과 날아가는 새, 노 젓는 사람을 순환하는 원 안에 표현한 최근작 ‘새가 있는 풍경’도 내놓았다. 작가는 “미술이 너무 과학화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맛으로 다시 회복하고 싶다”며 “서사와 시적, 문학적 표현 등을 통해 신화와 샤먼성 등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실천적 예술가인 박불똥은 ‘미투’(2020)라는 작품을 내놨다. “‘미투’가 짐승에서 인간으로 변하는 계기가 아닌가”라며 작품을 설명한 그는 1982년 초창기 ‘현발‘의 포스터 이미지를 오마주한 이번 전시 포스터에서 나체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바나나를 든 채 줄 서 있는 장면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 최고치를 경신하는 한반도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이태호의 ‘무명 사망 근로자를 위한 비’(2020)는 현실과 소통하는 비판의식을 여전히 보여준다. ‘막걸리 보안법’(2002)는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대에 실제로 일어났던, 매우 사적으로 막걸리 한 잔하고 한 '발설'로 인해 법정에 서야 했던 여러 인물들의 기록이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미술인(특히 미술이론가)들의 이름이 여럿 등장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전시 기간 중 갤러리 내 프로젝트 공간에선 현장 진행형 공동 작업도 이뤄지고, 25일오후 3시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