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은 동시에 신규 투자자 모집하거나 전라북도 등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플랜B 마련에도 나섰다. 파산 위기에 몰린 이스타항공이 회사를 지키고 직원 1600여 명의 실직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떤 방안이든 마련하려는 자구책으로 보인다.
◇ 파산 몰린 이스타, 제주항공과 소송전 돌입 "셧다운 요구에 경영난 악화"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을 상대로 소송 준비에 돌입했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의 계약해지가 '무효'라는 것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법적 공방의 골자는 제주항공이 선지급한 이행보증금 115억 원 반환 여부와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 1700억 원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다.
양사는 M&A가 무산되기 전 수개월 동안 계약상 미지급금이 선결 요건인지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셧다운 지시를 두고 녹취록 등을 공개하며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다.
이스타항공은 "계약서상 미지급금 해소는 선결 요건이 아닌데 제주항공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계약 불이행 시 모든 책임은 제주항공에 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이 계약 해지 권한이 없다는 걸 소송을 통해 확인하고 인수를 완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또 제주항공이 지난 3월 셧다운(운항 중단)을 지시하지만 않았다면, 사태가 이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한다. 결국 "셧다운 이후 발생한 미지급금과 경영 악화의 책임 역시 제주항공에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조종사노조는 당시 제주항공 대표였던 이석주 전 사장이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에게 셧다운 계획을 말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당시 통화에서 "셧다운 하면 슬롯이 회수되고 항공사의 고유한 기능이 사라진다"며 국내선 운항 중단의 심각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이석주 당시 대표는 "셧다운하고 희망퇴직 프로그램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최종구 대표는 "국내선을 멈출 때 고민이 많았다는 것은 공개된 녹취로도 알 수 있다. 제주항공이 직원들을 밀어내려 국내선을 멈추게 한 것"이라며 "제주항공의 무리한 경영 개입으로 이스타항공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주항공은 '셧다운 결정 주체는 이스타항공이었으며 제주항공은 조언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셧다운은 어디까지나 이스타항공의 의사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녹취록 공개에 "당시 국제선은 이미 셧다운 해서 운항하지 않았고 국내선은 운항하더라도 적자만 늘어나는 상황"이었다면서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주항공의 전 대표이사는 국제선과 마찬가지로 국내선도 셧다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은 계약 파기 책임이 이스타항공에 있다는 점을 물어 이미 낸 이행보증금 115억 원 중 일부라도 반환받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계약해지 무효 가처분소송을 통해 M&A 해지 통보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제주항공이 제기한 계약금 반환 소송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주식매매계약을 위반한 것은 오히려 제주항공"이라며 "제주항공의 주식매매계약 이행을 촉구하며 계약 위반·불이행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제주항공에 있다"고 주장했다.
◇ 국토부 "플랜B 제시하라"…신규 투자자 유치 총력
이스타항공은 소송전과 별도로 제주항공 대신 자금을 수혈해 줄 수 있는 신규 투자자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부가 23일 "이스타항공이 내놓을 '플랜B'를 보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파산이나 폐업에 이르기 전에 이스타항공이 플랜B를 내놔야 정부에서도 지원을 결정할 수 있다"며 정부 지원의 전제로 이스타항공의 자구안 마련을 당부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이후 전체 운항노선을 중단하면서 운항 증명(AOC) 효력이 상실됐다. 운항 재개 계획을 국토부에 제출하면 3개월 만에 효력을 되살릴 수 있다. 물론 그전에 밀린 조업비 등을 지불해야 한다.
항공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신규 투자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이미 완전자본잠식(-1042억원)에 빠진 데다, 체불임금과 조업료, 유류비 등 미지급금이 1700억 원에 달한다. 수천억 원의 자금을 추가로 투입할 단일 투자자를 단시간 내 찾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 합병이 이미 무산된 만큼 경영권 매각보다는 소수 지분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은 '전북 거점 항공사'로 출범한 만큼 전라북도의 지원을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플라이강원이 강원도 양양 공항을 베이스로 운항하는 것처럼 지역 연고 항공사로, 당장 국내선 운항만이라도 재개해 투자 유치 파산만은 막고 투자 유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상직 의원은 전날 KBS전주 라디오에 출연해 "임직원이 사즉생 각오로 똘똘 뭉치고 지방자치단체와 도민이 향토기업인 이스타항공 살리기 운동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의 LCC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간산업안정 기금은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에, LCC 지원 3천억 원은 티웨이항공이나 에어부산 등에 지원하고 있어 이스타항공을 지원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제주항공이 힘들면) 플랜B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다만 전북도는 "아직 구체적으로 지원을 검토한 적이 없다"며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여러 가지 플랜B를 구상 중이지만,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은 승소만이 살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쌓인 부채가 너무 많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회생 가능성은 낮다"며 "제3의 인수자가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어 소송에서 이기지 않는 한 파산은 막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의 계약 해제 빌미가 됐던 체불임금과 미지급금 규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달부터는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을 하는 등 고정비를 줄여 소송 기간을 최대한 버티겠다는 방침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파산하면 직원 1600명이 거리에 나앉게 되니 최대한 버티겠다"며 "지역, 정부 등으로부터 유동성을 지원받아 국내선을 재운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