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추행 방조 혐의' 범죄될까…"쉽지 않아"vs"충분"

"박원순 성추행 혐의 입증 전제돼야 방조범 처벌 가능"
"방조범뿐 아니라 성추행 범죄도 입증 가능" 입장도
'인천 살인사건' 판례선 "간접적 인식도 방조죄 성립"
박 시장 추행 범죄 증거확보 여부 관건일듯

(사진=자료사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강제추행을 서울시 비서실 관계자들이 방조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범죄가 성립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고 있다.

앞서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 측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4년간 성고충을 앓다 20명 가까이 되는 서울시 전·현직 비서관에게 전보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러면서 피고소인인 박 전 시장이 사망했다더라도 방조자들에 대한 수사와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공소권 없음' 박 전 시장 성추행 범죄 입증 가능해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일각에서는 방조범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형법상 방조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본건'이라고 할 수 있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범죄를 먼저 입증해야 해서다.


문제는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사건이 '공소권 없음' 처리되면서 수사기관이 해당 범죄를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경찰과 검찰은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박 전 시장의 입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강제추행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최근 방조 의혹 직원과 관련해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한 데에도 이같은 배경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법적 정황이 마무리되지 않아 보수적인 판단을 내린 게 아니냐는 취지다.

한 현직 차장검사는 "가해자가 없는 종결된 사건을 주변 증거만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더구나 직접 연관된 관계자가 적은 폐쇄적인 구조에서 발생한 사건인만큼 피해자의 진술과 증거가 강력한지 등이 중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서울시 비서실 관계자들이 박 전 시장의 범행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법상 방조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주범의 범행사실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해야 하고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비서실 관계자들이 박 전 시장의 추행사실을 인지한 채로 성추행 범죄가 강화되도록 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증거를 봐야겠지만 방조범으로 지목된 분들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판단할 정도로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황을 찾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당사자들이 추행 범죄가 심각하는 점을 몰랐다고 발뺌할 경우 당시 인지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지가 중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성추행 범죄 우회 입증 가능한 '신의 한수'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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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방조범죄에 대한 입증뿐만 아니라 본건인 박 전 시장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진상규명도 가능한 절묘한 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법원에서 방조범죄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를테면 지난 2018년 대법원이 판결한 인천 여중생 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인천 여중생이 8세 여아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뒤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다. 당시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씨가 살인을 방조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당시 법원은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인식하지 않고 미필적으로 인식하거나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해 예견이 가능하다면 방조했다고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주변적인 상황을 볼 때 범행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면 방조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한 서울시 간부는 "비서실 관계자 20명에게 관련 사실을 알렸다는 건 내부에선 거의 알고 있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며 "관련 사실을 모두 충분히 인지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법원이 성추행 관련 범죄에서 피해자 진술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다.

피해자 측도 기자회견에서 지난 5월 1·2심을 뒤집은 대법원 판례를 언급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A(40)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A씨는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어깨를 두드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 행위로 피해자가 놀라서 쳐다보면 혀로 입술을 핥는 행위를 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하급심에서는 "회사 자체가 위계가 강한 조직이 아니었고 피해자도 A씨 목에 낙서를 하는 등 장난을 치기도 했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 의사에 명백히 반해 이같은 행위를 한 것은 성적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을 뒤집었다.

한 전직 고검장은 "특히 최근 분위기상 법원이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방조 혐의 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박 전 시장의 추행 혐의를 규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박 전 시장에 대한 일종의 진상규명이 우회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선 강제추행 방조뿐 아니라 직무유기로 처벌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 현직 검사장은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할 당시 서울시 내에서 관련 법률이나 규정에 의거했을 수 있다"며 "이 경우 관련 피해 사실을 알맞게 처리해야하거나 인사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당사자는 직무를 행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피해자 측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수차례 인사이동을 요구했지만 인사 담당자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다만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일부에선 '직무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반론견도 나온다. 성고충에 대한 민원을 받았을 경우 취해야할 직무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는지 따져봐야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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