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 경주시청의 감독과 선배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던 고(故)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간절한 목소리를 여러 차례 냈지만 대한철인3종협회는 그 수장부터 귀를 닫고 있었다.
박석원 대한철인3종협회 회장은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철인 3종 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 오후 질의시간에 참석해 "당시에는 이 일이 이토록 위중한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 회장은 "2월14일에 구두로 보고받았다. 폭행 건이었는데 경찰 수사가 이뤄지면 그걸 지켜보자고 했다"며 "저희 대처가 굉장히 미흡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와 무관하게 협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실시해 가해자들을 징계할 수 있지 않았냐는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의 질의에는 "사건의 위중함을 제대로 파악 못했다. 6월 29일에 처음으로 다른 선수들의 진술을 보고 이 사건이 상당히 위중한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박 회장이 최숙현 선수의 폭행 피해 건을 보고받은 14일 협회는 대의원 총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폭행 가해 혐의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주장 장윤정은 최우수선수 트로피와 상금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대의원 총회가 끝난 이후에 처장에게 보고 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협회는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협회는 2월26일 경기력향상위원회를 통해 2020년 하츠카이치 아시아 트라이애슬론 선수권 대회 파견 명단을 발표했고 여자 엘리트 선수 명단에 장윤정을 포함시켰다.
박 회장이 폭행 피해 건을 보고받은지 12일이 지난 시점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만약 협회가 선제적 진상조사와 대응에 나섰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박 회장은 "성적이 우수한 선수는 폭행을 해도 괜찮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는 유정주 의원의 지적에 "저희가 장윤정 선수가 연루됐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남겼다.
12일이 지났는데도 가해 혐의자가 누구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면 협회는 성적 지상주의 앞에서 비위 건에 대한 대응 의지가 없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최 선수는 이후에도 대한철인3종협회를 포함한 여러 관련 기관에 고통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자 지난 6월26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월14일부터 6월26일까지 130여일동안 협회가 안이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최 선수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유정주 의원에 발언에 박석원 회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