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수사관 상대로 '국가배상금' 구상권 청구해야"

[조작간첩 리포트-책임③]'가해자들' 책임 묻지 않는 정부
"정부, 구상권 청구로 국가폭력 남용 단죄 보여야"
민주당 오영훈 "재심 무죄 사건이라도 관련자 특진 취소"

글 싣는 순서
①[단독]조작간첩 피해자 허간회씨는 고문 수사관 '옆집'에 산다"
②[단독]간첩 조작해 특진한 '그사람들'…특진취소 손놓은 정부
③"간첩조작 수사관 상대로 '국가배상금' 구상권 청구해야"


(그래픽=고경민 기자)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있다. 조작간첩 사건에서는 평범한 시민을 잡아 간첩 누명을 씌운 수사관들이 1차적 가해자다.

하지만 수사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린 사례는 드물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조작간첩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문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나 구타, 불법구금 등 가혹행위는 빈번했다.

1984년 무기징역을 받은 이장형씨는 57일 동안 불법 구금돼 전기·물 고문과 협박을 받았다. 간첩 혐의로 15년 동안 복역한 신귀영씨도 2개월 동안이나 잠을 재우지 않는 등 온갖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런 고문과 가혹행위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형법 125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 자격 정지를 내릴 수 있는 중죄다. 하지만 이근안도, 송성부도 모두 형사처벌을 피했다. 조작사건 무죄 판결 당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피해자 지급 국가배상금만 수천억원…구상권 청구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형사가 아닌 민사 소송은 유효하다. 실제로 조작간첩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등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해, 승소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는 수억원의 배상금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국가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국가배·보상금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천문학적인 배상금의 지급 책임을 오롯이 정부(법무부)가 떠안는 현재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잘못은 국가폭력을 자행한 수사 당사자나 기관이 저질렀는데, 시민이 걷는 혈세로 모든 보상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견해다.

(사진=스마트 이미지 제공)
평화박물관 변상철 연구위원은 "잘못을 저지른 주체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게 맞는다"라며 "국가폭력을 자행한 수사 당사자가 져야 할 책임을 나머지 국민 전체가 지는 지금의 구조는 분명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조작사건 수사에 가담한 경찰이 받은 특진과 서훈 혜택을 취소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단순히 혜택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법무부가 해당 수사관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사건이라면, 또 무죄 판결 이유가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성(고문 등)이 맞는다면, 정부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배상금 중 일부를 수사 당사자에게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같은 논리로 사건을 기소한 담당 검사,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 등을 상대로도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송상교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가해자들이 본인 행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진 적이 없다"며 "수사 체계 말단에 있는 수사관은 물론, 지휘했던 책임자 전반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이런 구상권 청구 노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가해자들이 사과나 반성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지금의 현실은, 국가폭력 남용에 대한 처벌과 단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능했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사진=윤창원 기자)
◇국회에서 나온 "특진 취소" 목소리…경찰청장 "대책 마련하겠다"

다만, 이제라도 국회에서 관련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지난 20일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재심으로 무죄가 난 과거사 사건을 사례별로 살펴봐야 한다"며 "경찰공무원법상 특진 제도의 근거 규정을 바꿔서 (특진 취소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사실관계가 확인될 경우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송 변호사는 "고문 피해자가 명예회복을 위해 가장 애타게 주장하는 부분 중 하나는 가해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이라면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공무원 개인이 책임을 지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시스템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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