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연합뉴스 취재 결과 서울대 서문과 소속 교수 6명은 서울대 감사 결과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된 연구지원금과 장학금을 공동관리 계좌로 반납하도록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성추행 의혹으로 해임돼 징계 대상이 아닌 A씨를 뺀 5명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서울대 상근감사실에서 지난 2월 작성한 '특정감사 결과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서문과는 2014년 9월∼2018년 10월 수업 강의 조교로 대학원생들을 추천한 뒤 이들에게 업무를 시키지 않고, 지급된 강의 조교 연구지원금 중 일부를 학과사무실에서 관리하는 '일괄 관리금' 계좌로 돌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맞춤형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돼 등록금을 감면받은 대학원생들에게는 감면받은 돈 전액을 일괄 관리금 계좌로 송금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원생들로부터 회수한 금액은 8천728만원이었다.
교수들은 "일괄 관리는 오래전(2009년께)부터 관행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일괄 관리금이 학과 공식 행사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문제된다는 생각을 못 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감사실은 "인건비 회수 및 관리 목적이 관련 규정에서 정한 취지와 절차를 위배했다"며 "서문과는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된 연구지원금 등을 임의로 회수해 일괄 관리했으며, 관리금 일부를 개인 계좌로 관리하고 교수 개인 명의로 기부하는 등 회계질서를 문란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감사실은 교수들에 대한 징계를 권고하고, 부당하게 걷힌 8천728만원을 법인회계로 반납하도록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교수들은 8천728만원을 서울대 법인 회계로 반납했으며 현재 이들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교육부의 석·박사급 인재 양성사업인 'BK21 플러스 사업' 연구비 집행 과정에서도 대학원생들의 연구장학금이 부당하게 회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산학협력단 감사팀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한 서문과 교수들은 2014년 1월∼2018년 8월 연구장학금을 지급받은 대학원생들로부터 매월 일정 금액을 회수해 총 4천936만원을 공동관리했다.
다만 BK21 플러스 사업에서의 연구장학금 공동관리행위는 징계 시효 3년이 지나 이 사업 참여 교수들에 대해서는 '경고' 권고만이 내려졌다.
◇ "항의해도 묵살…생활비 부족해 알바하느라 학업에 지장받아"
서문과 대학원 졸업생들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수들의 인건비 반납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혀왔음에도 악습은 수년간 이어졌다.
졸업생 B씨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이 감액되면 차액만큼을 학과 통장으로 입금하도록 해 3학기 동안 약 180만원씩 과에 전달해야 했다"며 "인건비와 장학금을 받아도 매번 학과에 돌려주다 보니 대다수 대학원생이 과외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등 학업에 지장을 받으며 생활고를 겪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B씨는 또 "대학원으로 들어오는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적절히 분배되지 않고 과 통장으로 들어가 대부분 회식에 쓰인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낀 학생들이 종종 문제를 제기했으나 바뀌지 않았다"고 전했다.
졸업생 C씨는 "장학금 환수에 대해 교수들에게 항의하면 '배가 불렀다', '감사할 줄 모른다'며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2017년 2월 서문과 교수회의록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의 인건비·장학금 반납금이 주 수입처였던 학과 운영비의 주요 지출 내역은 각종 술자리 행사 비용과 와인 구매비용 등이었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서문과 전 교수 A씨 사건 조사 결과를 담은 결정문에서 "서문과는 '술문과'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학과 회식이 잦았고, '대학원에는 공부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표현을 교수가 할 정도로 술자리 참석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학생들의 진술을 언급하며 과도한 회식 문화를 지적했다.
졸업생 D씨는 "대학원생들의 장학금을 모아 학과 운영비가 풍족해지다 보니 MT 비용에 과도한 금액을 책정했다"며 "평소 3·4차까지 기본으로 이어지던 술자리, 대학원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학부 종강모임에도 이 돈이 쓰였다"고 말했다.
◇ '깜깜이' 징계위원회…감사도 미흡
앞서 서울대 서문과에서는 전 교수 A씨가 외국 학회 참석차 자신의 제자와 동행하면서 2015년 1차례, 2017년 2차례 성추행을 저지르고 제자의 연구 성과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받고 지난해 해임됐다.
이 사건으로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를 받던 학생들이 인건비와 장학금 반납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대 국정감사 때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전 의원이 오세정 서울대 총장에게 서문과의 'BK21 장학금 페이백 의혹'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감사 이후 서문과 교수들이 대거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정작 피해를 본 당사자들은 징계가 어떻게 이뤄질지 알 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들은 "교수 징계사항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전혀 통지가 안 된다"며 "교수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만 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배제된다"고 말했다.
학과 지원금에 대한 감사가 미흡한 점이 문제를 키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영 서울대 인문대 학장은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며 서문과 감사 사실을 인정했다.
이 학장은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8년 말께 인문대 차원에서 감사를 청구하려 했지만, 단과대 차원에서 감사를 의뢰할 수 없는 등 절차적 어려움이 있었다"며 "학과에 배정되는 각종 지원금에 대한 감사가 그간 미흡했던 만큼 앞으로 감사를 강화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