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논란으로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돼 정계에 첫 발을 딛었다.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후보 양보는 당시 진보진영에 오랫동안 회자됐다.
정치권에 들어온 박 시장은 3선 서울시장을 지내며 진보 진영 대선 주자로 꾸준히 거론됐다.
대통령 국정운영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서울시장을 10년간 경험한 박 시장은 올해 4·15 총선에서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 10여명이 당선되면서 차기 대권 후보로 다시 이름을 올렸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기본소득과 부동산 정책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이슈를 주도했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하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석하면서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1학년 때 제적을 당했다.
박 시장은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수학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구지검에서 초임검사로 일한 박 시장은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 시장은 1995년부터 시민단체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참여연대'에서 사무처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는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고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가게 등의 시민단체를 설립했다.
기부받은 물건을 다시 가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팔고 그 수익을 기부하면서 국내 기부문화 확산을 주도했다.
박 시장은 2017년 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한 민주당 내 전폭적인 지지로 고전하다가 20여일 만에 후보직을 철회했다.
이후 지지율은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난 6일 민선 7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또 "다음에 대선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해 차기 대선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인 동시에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던 박 시장은 최근 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에 고소된 뒤 극단적 선택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