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김규봉 감독은 선수들에게 의사 면허도, 물리치료사 면허도 없는 안씨를 의사라고 소개했고, 선수들은 감독의 요구에 못 이겨 안씨의 인건비를 부담했다.
김 감독, 주장인 장모 선수 등의 비호 아래 안씨는 선수들에게 폭언·폭행을 일삼았다. 안씨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선수들의 증언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책임 주무부처 어느 곳도 이를 알지 못했다. 고 최숙현 선수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뒤에도, 이들은 안씨에게 어떠한 책임을 물어야 할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
김규봉 감독은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나와 "2008년 안씨를 처음 만났고 선수들 요청으로 팀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안씨는 경북 경산 한 내과의원에서 물리치료사 보조직원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관계자는 "주장인 장모 선수 어머니의 입김이 세서, 소개로 '팀 닥터'로 근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직장운동경기부의 팀닥터나 트레이너, 운동처방사 등은 통상적으로 지자체와 '정식 계약'을 맺고 일한다. 안씨는 정식 계약 없이, 선수들에게 돈을 받고 임시로 고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들은 "안씨가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땄다고 밝혀 의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안주현씨의 폭행 혐의는 고 최숙현 선수가 남긴 녹취록에 담겼다. 추가 피해자들은 안씨의 성추행 혐의를 진술했다.
선수들에게 돈을 받아 챙긴 혐의도 있다. 고 최숙현 선수는 생전에 낸 징계요청서에서 "팀닥터는 2015, 2016년 뉴질랜드 합숙 훈련을 하러 갈 당시, 정확한 용도를 밝히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 2019년 약 2개월 간의 뉴질랜드 전지훈련 기간에는 심리치료비 등 명목으로 고소인에게 130만원을 요구해 받아 간 사실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향력이 있는) 팀닥터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고, 정확한 용도가 무엇인지를 더는 물을 수 없었다. 팀닥터가 요청하는 금액만큼의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인과 고인 가족 명의 통장에서 팀닥터에게 이체한 총액만 1천 496만 840원이다.
고 최숙현 선수의 고소에 이어 경주시체육회가 다른 선수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성추행과 폭행 혐의로 지난 8일 안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경주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 선수 2명이 폭행 등 혐의로 전날 검찰에 추가 고소했다. 검찰은 안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체육계에서 나오는 선수들 미투 아시죠. 선수들이 직접 말해야 알지, 그 전에는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경주시청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안씨의 만행을 지자체·체육회 차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 최숙현 선수가 속했던 팀은 경주시청이 경주시체육회에 위탁 운영을 맡긴 팀이었다. 경주시체육회는 경주시로부터 연간 9억원의 예산을 받아 트라이애슬론팀 등 직장운동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감독 선임과 선수 입단, 해고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음에도 선수들의 폭력 실태에 관한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시는 지난해 소속 선수들을 대상으로 '직장운동경기부 (성)폭력 실태조사'를 했지만, 폭력 행위가 없다는 결론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식 채용 절차를 밟지 않고 '깜깜이 채용'된 안씨와 같은 지도자들을 찾아내, 추가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독 등이 비공식적으로 지도자급 직원을 채용하고 선수들이 강압에 못 이겨 이에 따르고, 체육회 등이 방관하면서, '악랄하지만 실체 없는' 권력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투명인간은 징계할 수도 없다"…전수조사·조례 제정 나서야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허정훈 교수(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대회 나가서 같이 사진 찍고 메달 따고, (시청 등 관계자들은) '팀 닥터'가 누구인지 다 알았을 것"이라며 "대한체육회, 경주시체육회·경주시 모두 최숙현 선수의 죽음에 일조한 간접적 공범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식 티오(TO)에 잡히지 않은 이들은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은 징계할 수도 없다. 이렇게 사고가 많이 난다"며 "사태가 터지면 우리(주무부처)는 인건비 지불한 적도 없고, 채용한 적 없고, 우린 모른다며 나 몰라라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결국 해답은 △'공식화되지 않은 지도자' 전수조사 △시체육회 관련 조례 제·개정 △전문 치료사·상담사 배치 등이라고 조언했다.
허 교수는 "공식화되지 않은 지도자를 전수조사해, 이 같은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며 "실제로 학교 체육에서도 학교의 묵인 하에 학부모들이 돈을 거둬서 지도자 월급을 주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 체육회를 운영하는 방향성 등을 분명히 하고, 선수 인권 관련 내용을 조례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당사자인 선수들의 의견을 세심히 반영해야 할 때"라며 "실적 만능주의 등에서 탈피해야 한다. 더 이상 묵인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