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76세 노인의 한숨 "폐지 주워 2천원…이젠 반찬 걱정" ②6남매 엄마 "월급 30만원…내년에는 이마저도 끊겨" (계속) |
작은 방 2개에 나눠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정씨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아이들 역시 자기 방을 갖고 싶을 나이가 됐지만 투정을 부리기보단 오히려 안심시키는 말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부업의 여왕'으로 불리다 안정적인 생활과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보험의 여왕'을 향해 노력하던 정씨.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정씨와 6남매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달인'에 가려진 현실…6남매를 위한 헌신. 또 헌신
서울시 은평구의 한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정씨와 6남매. 정씨는 지난 2013년 다양한 분야의 달인을 소개하는 한 방송에 출연하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정씨는 부업으로 하던 액세서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달인으로 전파를 탔다. 그의 뛰어난 손놀림과 함께 6남매를 홀로 키우는 사연까지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는 출연자가 됐다.
방송 이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연락이 쇄도했지만 정씨는 한사코 마다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줬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정중히 거절했다.
사실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정씨의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부업에 하루 20시간씩 매달려야 했고 한 달을 채워도 그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100만원 남짓이었다. 6남매를 책임지는 정씨에게 이 금액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또 매일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탓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부족했던 것이 현실이다.
정씨는 "액세서리 부업을 10년 넘게 했는데 하루 20시간씩 일하다보니 밤낮이 바뀌게 되고 생활 패턴도 불규칙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는 것도 어려웠다"라며 "고정적인 수입과 더불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부업을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1년 반 정도 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니 아이들도 좋아했고 나 역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고 털어놨다.
정씨가 6남매를 홀로 돌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배우자의 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6남매 모두의 양육을 택했다. 그는 "라면 하나를 끓여 먹더라도 같이 살자는 마음이 컸다"라며 "아이들도 형제가 많아서 좋아한다. 어느누구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업을 비롯해 새벽에 우유배달소에서 일하는 등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온전히 정씨가 지켜줘야 할 6남매를 위해서 헌신, 또 헌신했다.
정씨는 아이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얻는 수익만으로는 6남매를 뒷바라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올릴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약 2년 전부터 보험 판매 일을 시작하게 됐다.
보험 판매 일을 하면서 이전보다 나아진 수입을 올린 정씨.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도 정씨를 미소짓게 했다. 그는 "지난해 많이 벌 때는 200만원 정도, 못 벌어도 120만원은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과거보다 더 안 좋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생활화되면서 보험 판매 실적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씨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다. 사람들도 만나기를 꺼려해 실적이 좋지 않다"라며 "지금은 한 달 수익이 30~50만원 정도 전부다. 이마저도 지난해에 거둔 실적으로 인한 수당이 나오는 수준이다. 올해 연말이 지나면 이 역시 끊기게 되기 때문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인이 된 첫째를 제외한 성장기에 있는 5남매의 경우 영양 섭취가 중요하다. 정씨는 아이들을 위해 최대한 먹을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따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한적십자사 봉사원들이 손수 만들어 제작하던 반찬도 더는 받을 수 없게 됐다. 아울러 사랑의 빵 나누기 프로그램(기업, 단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만든 빵을 서울시내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참여형 봉사)도 중단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던 빵도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정씨 가족을 오랜 기간 도와주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의 이숙자 봉사원은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내 옷을 잡고 '할머니, 빵은 언제 가져와요?'라고 묻곤 한다. 아이들이 너무 착해서 마음이 더 간다"라며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올해 2월부터 지금까지 빵 한번 가져다주지 못 했다.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무너질 것 같았던 순간도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부분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정씨가 계속 일어설 수 있던 것은 6남매 덕분이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아이들은 이를 창피하다거나 불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소한 것에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엄마를 안심 시키는 기특한 남매들이다.
정씨는 "재난지원금을 받고서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과 쇼핑을 나섰다. 평소 사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유명 브랜드 신발을 하나씩 사주는데 셋째 아들이 '엄마 우리 이렇게 비싼 것 사도 괜찮아요?'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자주는 못 해주지만 이번에는 사줄 수 있어'라고 말해주니 너무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마음 한켠이 짠해지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6명 모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하다. 투정을 부리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더 해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정씨의 마음이 더 불편할 정도다.
정씨는 "아이들에게 늘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 그렇다고 욕심을 다 버려서도 안 된다고도 했다"라며 "애들이 고기를 좋아하는데 '고기는 1주일에 한 번만 먹는거야'라고 말하면 그렇게 받아들여준다. 너무 고맙다"고 밝혔다.
정씨의 바람은 하나다. 아이들만큼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겠다. 그게 엄마니까"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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