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스토킹해도 처벌은 '솜방망이'…관련법 미비

전문가 "여성 살해범죄 40%, 사건 전 스토킹"…'스토킹 방지법'은 국회 문턱 못넘어

(사진=자료사진)
신모(50)씨의 스토킹은 1991년 시작됐다.
대학 선배였던 A씨에게 구애를 거절당한 신씨는 계속해서 문자와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집으로 찾아간 적도 있었다.

A씨를 협박하고 폭행까지 하게 된 그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는 등 네 차례 처벌을 받았으나, 스토킹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다른 여성들과도 사귀지 못하게 된 신씨는 A씨에게 "지조 없는 한심한 네X 때문에 내 인생이 처절히 망가졌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가 지난 2일 협박죄로 또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현행법상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지속적·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미행하는 행위인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뿐이다.

법정형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은 신씨 사례처럼 스토킹 행위 외에 협박이나 건조물침입 등 다른 혐의를 적용해 형량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 "살해당한 여성의 약 40%25, 살해 전 스토킹 피해 입었다"

스토킹은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적 근거가 부족해 가해자 처벌은 물론 피해자 보호조치도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1월에는 연인이 이별을 통보하자 스토킹하던 남성이 피해자 일터로 찾아가 흉기와 둔기를 휘두른 뒤 도주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지난달 살인미수·주거침입죄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6일 "여성 대상 살인사건에서 40% 정도가 사건 발생 전 스토킹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사람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토킹 방지법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 '스토킹 방지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스토킹 단계에서 가해자를 처벌하면 살인이라는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토킹 방지법, 19대부터 꾸준히 발의…번번이 무산돼

스토킹 방지법은 19대 국회부터 계속해서 발의돼 왔지만 매번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남인순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법안이 소위원회에서 심사가 되지 않았다"며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스토킹 방지법이 단순한 구애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 사건'을 언급했다.

안인득은 범행 전 한 여고생을 스토킹했다. 스토킹 방지법이 있었더라면 해당 사건의 발생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스토킹이라는 범죄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는 비판에 대해 이 교수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피해자가 공포심을 느꼈는지를 입증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남 의원은 "자세한 기준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를 하면 되고 관련 판례를 하나씩 만들어나가면 될 것"이라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잘못된 관념을 가진 이들은 선의로 한 행위로 범죄 피의자가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지속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매년 늘어나는 스토킹 범죄…"방지법 절실"

이 교수는 새로 만들어지는 스토킹 방지법에 필요한 내용으로 ▲ 구속요건에 '합리적 두려움' 용어 포함 ▲ 가해자-피해자 관계의 광범위한 설정 ▲ 접근금지 명령의 구체적 시행방법 명시 등을 꼽았다.

'합리적 두려움'은 스토킹 방지법이 도입된 외국에서도 언급되는 용어로, 가해자가 괴롭힐 의지가 있었는지가 아니라 피해 여성의 두려움이 구속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해자-피해자 관계는 교제 여부 등으로 협소하게 처벌 기준을 마련하지 말아야 하며, 접근금지 명령도 '100m 이내 접근'을 어떻게 통제할지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남 의원은 "법무부에서 스토킹과 데이트폭력 범죄 관련 법안을 2018년 5월 입법예고했지만 아직 합의가 덜 돼 정부안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정부안이 합의되면 국회 내에서 입법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스토킹 범죄 건수는 583건으로, 경범죄처벌법으로 스토킹을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 312건에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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